모욕당했을 때 드는 복수의 유혹…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망 탓
기사도 정신이 남긴 왜곡된 명예관… 참된 명예는 평판에 휘둘리지 않아
타인 만들어 낸 나에 속지 말아야… 가장 단단한 대응법은 의연한 무시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에게 가장 좋은 복수는 무엇일까. 많은 사람은 복수의 전략으로 성공을 꼽는다. 출세하거나 부자가 돼 무릎을 꿇리겠다는 것이다. 복수는 영화의 단골 소재이기도 하다. ‘영웅본색’ 등 과거 홍콩 누아르 영화는 주로 가족이나 친구의 죽음을 되갚는 이야기를 내세웠다. 복수혈전을 벌이는 주인공의 활약상에 많은 관객은 열광하곤 했다.》
자신의 자존심에 크게 손상이 가지 않았다면 굳이 반응하지 않는 것이 상책이다. 타인의 견해는 우리의 행동에 실질적인 영향을 줄 수 있을 때만 가치가 있다. 우리의 명예는 근거 없는 비방에 쉽게 훼손되지는 않는다. 쇼펜하우어는 “비난받을 이유가 없다고 진정으로 느끼는 사람은 비난을 받아도 의연히 무시할 것이며, 그래야 마땅하다”고 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명예가 목숨보다 더 중요하다”는 기사도 정신은 자신의 생존보다 자신에 대한 타인의 견해가 더 중요하다고 여기는 잘못된 믿음, 나아가 미신에 가깝다.
명예는 타인과의 비교 속에서 형성되는 상대적인 가치다. 타인의 평가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명예는 본질적으로 간접적인 속성을 지녔다. 이 때문에 자신의 명예에 가해지는 외부의 공격을 무시한다면 상처받는 일도 없다. 기사도의 명예 원칙은 물리적 폭력을 이용해서라도 바깥의 존경과 관심을 얻으려 한다는 점에서 어리석다. 기사도 정신은 남에게 잘 보이려는 허영심에서 비롯된 현상이다.
세상을 살다 보면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 생각보다 많다. 그 핵심에는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 욕망이 크게 작용한다. 남들의 평판에 휘둘리는 일이 많을수록 세상에 대한 복수심도 함께 자란다. 자신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해 주지 않는 타인과 세상을 저주하게 되는 것이다. 쇼펜하우어에 따르면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명예훼손을 당해도 진정으로 자신의 가치를 인정하기에 아무렇지 않은 상태에 이른다. 설령 자신의 가치를 인정하는 마음이 부족하더라도, “현명함과 교양을 발휘해 아무렇지 않은 척하거나 분노를 숨기는 것”이 더 낫다. 타인의 말 한마디에 쉽게 상처받고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허영과 허세로 가려진 자존감이 그만큼 취약하기 때문이다. 남에게 잘 보이려는 욕망만큼이나 무시당하지 않으려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가진 척, 아는 척, 잘난 척하는 허세의 밑바닥에는 쉽게 상처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이 있다. 자신의 능력에 대한 확신이 확고하다면 자신의 명예를 훼손당하는 일이 생기더라도 칼을 빼 들고 복수에 나서는 어리석음은 피할 수 있다. 상처받은 명예를 회복하려는 이유는 자신의 진정한 가치를 스스로 충분히 신뢰하지 못해서다.오늘날 우리는 거리에서의 사소한 말다툼이 폭행 사건으로 번지는 뉴스를 종종 접한다. 유명 연예인이나 재벌, 정치인들이 자신의 명예를 잃었을 때 그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도 본다.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그들의 견해에 휘둘리지 않을 때 비로소 우리는 본래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다. 누군가 우리에게 “명예와 목숨 가운데 택하라”고 한다면 답은 당연히 목숨이다. 우리의 생명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세상에 없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온갖 모욕을 겪거나 굴욕감을 느끼더라도 적당히 무시하면서 버티는 단단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우리에게 상처를 줬다는 사람은 사실 우리 자신의 상상에 의해 만들어진 경우가 많다. 기사도 정신을 발휘해 칼을 빼 들고 겨누려 해도 가해자의 실체는 없이 상상의 복수극을 펼치는 것일 수 있다.
강용수 고려대 철학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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