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승현의 시각] 부메랑이 될 노동정책 과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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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현의 시각] 부메랑이 될 노동정책 과속

국내 대표적인 방위산업 기업 A사는 최근 본사 각 층 사무실 입구에 얼굴 인식 근태 관리 시스템을 도입했다. 정부가 포괄임금제를 금지하는 입법을 예고한 가운데 정확한 근로시간 관리를 위해 선제적으로 마련한 조치다. 해당 법안은 알려진 대로 ‘공짜 야근 근절’ 등 근로자 권익을 보호하겠다는 취지인데, 어찌 된 일인지 새 시스템 도입 후 직원들의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한다. 출퇴근은 물론 수시로 드나드는 시간까지 기록돼 진짜 일하는 시간이 명료해지면서다.

근로자추정제까지 도입 추진

최근 삼성전자 노조의 성과급 요구 이슈로 묻혀 잠시 수면 아래로 내려가 있지만 정부는 6·3 지방선거 이후 포괄임금제 금지, 정년 연장, 근로자추정제 도입 등 굵직한 노동정책을 밀어붙일 태세다. 고용노동부는 지난달 ‘공짜노동 근절을 위한 포괄임금 오남용 방지 지도 지침’을 발표했다. 기본급과 각종 수당을 구분하지 않거나(정액급제), 연장·야간·휴일수당 등 모든 수당을 포괄해 산정·지급(정액수당제)하는 것을 금지한다는 게 골자다. 근로자 동의 아래 연장·야간·휴일수당을 항목별로 지급하기로 한 약정만 유효한 것으로 보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침대로 입법된다면 공짜 야근 근절이라는 소기의 목적은 달성하겠지만, 정작 실제 근로시간이 백일하에 드러나면서 대다수 근로자의 소득이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정부는 근로자추정제 도입도 서두르고 있다. 사용자가 직원으로 부리면서도 근로계약을 맺지 않고 4대 보험 의무와 근로시간 규제를 회피하는 ‘가짜 3.3’ 노동을 근절하겠다는 것이 취지다. 물론 제도를 악용하는 악덕 사업주는 엄히 처벌해야 한다. 하지만 이 제도가 가져올 미래는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꼼수 사업주는 줄어들겠지만 업종을 가리지 않고 위탁·도급 계약이 끝나면 “나 근로자였다”고 주장하는 노무제공자가 급증할 것이다. 당장 주장만 해도 수백만~수천만원이 들어오거나, 적어도 사업주가 몇 달치 소득에 준하는 합의금을 제시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개정 노동조합법(노란봉투법)은 또 어떤가. 이제 법 시행 두 달여, 이런저런 논란이 있지만 원청기업과 하청노조가 속속 테이블에 마주 앉고 있다. 법 시행 이전에는 이런 그림 자체가 불법이었다 보니 대화 자체가 없었기에 하청노조의 기대도 한껏 올라와 있다.

선의 앞세운 과속 부작용 우려

그러나 안타깝지만 전문가들이 예상하는 몇 년 뒤 현장의 그림은 그리 밝지 않다. 그도 그럴 것이 원청의 사업이 갑자기 호황을 맞거나 하늘에서 뭉칫돈이 떨어지지 않고선 원청노조에 주던 것을 하청노조에 일부 나눠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확 달라질 곳이 있기는 하다. 바로 공공부문이다. 원청이 정부이다 보니 정권의 성향과 판단에 따라 세금으로 메워주면 된다. 결국 노란봉투법은 민간에는 큰 변화 없이 공공부문 하청 근로자 처우만 상향 평준화시킬 것이라는 얘기다.

심각한 노동시장 양극화 시대, 취약 노동계층 보호는 반드시 필요하고 일한 만큼 정당한 대가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작은 상처에는 연고를 바르고, 골절 환자에겐 깁스를 해야 하는 것이 상식이다. 환자 상태에 관계없이 일단 메스부터 꺼내드는 과속·과잉 처치는 또 다른 부작용을 부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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