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의 상법 개정 거부권 행사를 “이기적인 소수의 저항”이라고 맹비난했다. 그러면서 ‘더 센 상법’을 꼭 통과시켜 코스피 5000 시대를 열겠다고 다짐했다.
주식 투자자 1500만 명을 의식한 강공이겠지만 전형적 편 가르기다. 상법학자들에게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주주’로 확대하는 상법 개정을 물어보면 반대가 압도적이다. 못해도 3명 중 2명은 ‘말이 안 되는 입법’이라며 고개를 가로젓는다. 여러 복잡한 법리를 떠나 상식적이지 않다. 단기적으로 회사 이익과 주주 이익이 불일치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주주는 단기 차익, 회사는 지속 성장이 궁극적 목표여서다. 이사는 회사를 위해 일하는 존재여야 한다. 회사에 좋은 일이 궁극적으로 투자자에게도 좋은 일임은 당연지사다. 세계 주요국에서 이사의 주주 충실의무 입법 사례가 없는 이유다.
소액 주주 차별을 막기 위해 상법 개정이 절실하다는 주장도 이해하기 어렵다. ‘1주=1표’ 대원칙에 따라 소액 주주는 이미 공정한 대우를 받고 있다. 차별 시에는 언제든 손해배상청구소송 길이 열려 있다.
상법 개정론자의 요구와 갈망은 ‘동등한 대우’가 아니라 ‘특별한 우대’다. 상법 개정 운동의 핵심 축인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의 지난주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유상증자 비난 성명이 그 증좌다. 앞서 한화는 사상 최대 규모(3조6000억원)의 유증을 성공시키기 위해 소액 주주에게 상대적 특혜를 제안했다. 소액 주주보다 15% 높은 가격(시가)에 오너 측이 증자 참여를 결정한 것이다.
이런 양보안에도 포럼은 맹비난을 이어가고 있다. 발행 주식 수 증가에 따른 ‘주식 가치 희석’ 문제가 전혀 해소되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유입 자금으로 성장 잠재력을 확대하며 희석화를 자연 상쇄하는 유상증자 본래의 장점은 안중에도 없다. 더욱이 희석화는 대주주도 똑같이 겪는 리스크다. 소액 주주만 일방적으로 위험을 떠안는 것이 아니다.
증자 후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고성장을 지속하면 오너 측 증자 참여액(1조3000억원)이 매년 복리로 불어나기 때문에 대주주 양보가 아니라는 게 포럼의 주장이다. 헛웃음이 터질 지경이다. 그런 일이 일어나면 유상 신주를 15% 더 싸게 산 소액 주주의 수익률은 훨씬 높지 않겠나.
이 후보는 더 센 상법 실천 방안으로 자사주 소각 의무화, 집중투표제 활성화, 감사위원 분리 선출 확대를 꼽았다. 기업과 기업가에 대한 불신을 여지없이 드러낸 위험한 발상이다. 자사주 소각은 단기적으로 주당 순이익을 높여 일시적 주가 상승을 불러올 수 있지만 장기 성장 동력 측면에선 기업에 큰 부담을 준다. 소각의 본질이 ‘자본 축소’여서다. 투자처가 마땅찮은 기업에는 자사주 소각이 자본 효율성 제고 방안이다. 하지만 소각 강요로 기업 재무 선택권을 제약하는 것은 결코 선이 될 수 없다.
웬만한 선진국은 다 있는 포이즌필, 차등의결권이 봉쇄된 나라에서 실제 삼성, SK 등 유수의 기업이 자사주를 활용해 투기적 해외 헤지펀드로부터 경영권을 방어해냈다.
집중투표는 이사 선임 때 특정 후보에게 표를 몰아줄 수 있는 제도다. 지금은 선택인 집중투표를 의무화하면 또 하나의 세계 유일 규제 탄생이다. 분리 선출하는 감사위원 수를 1명에서 2명으로 확대하는 조치는 감사위원회를 통한 경영 간섭 길을 터준다. 성사된다면 지주사를 포함해 통제 불능에 빠질 상장사가 한둘이 아니다.
유능한 해외 펀드가 사내 의사결정기구를 장악한 뒤 경영을 더 잘하면 되지 않느냐는 생각은 위험천만하다. 거대 금융자본은 회사의 미래보다 돈을 맡긴 투자자에게 조기에 고수익을 돌려주는 일에 매진할 뿐이다. 무차별 자산 매각, 닥치고 배당을 통한 회사 재산 빼먹기로 치닫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할인점 강자였던 홈플러스가 사모펀드(MBK)에 인수된 뒤 법정관리 신세로 추락한 사례가 타산지석이다.
상법 개정은 단기 수익에 골몰하는 다수에 의한 황금알 거위 배 가르기다. 특정 시기에 주식을 보유한 소액 주주가 수많은 근로자 채권자 잠재주주의 미래를 약탈하기 때문이다. 선거를 악용한 지대 추구의 제도화가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