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점에서 최근 한국 수출 흐름은 단순한 경기 회복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한국의 지난달 수출은 전년 대비 48% 증가하며 11개월 연속 증가했다. 반도체 수출은 AI 인프라 확대와 메모리 가격 상승에 힘입어 173% 급증했다. 한국은 지금 반도체를 기반으로 새로운 도약의 기회를 맞고 있다.
이런 시점에 예고된 삼성전자 노조의 대규모 총파업은 결코 가볍게 볼 문제가 아니다. 반도체 산업에서 가장 중요한 자산은 최첨단 나노 공정 장비가 아니라 고객사와 쌓아 온 ‘신뢰’다. 글로벌 빅테크들이 삼성전자와 손을 잡는 이유는 단순히 기술력이 뛰어나서만은 아니다. 어떤 위기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무결점 적기 공급’에 대한 신뢰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글로벌 D램 시장의 36%를 차지하며 세계 정보기술(IT) 생태계의 중심축 역할을 하는 삼성전자 생산 라인이 멈춘다면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스마트폰, 자동차 등 산업 전반에 심각한 병목 현상이 발생할 것이다. 엔비디아, 애플, 구글 등 글로벌 고객사들에 납기 지연은 단순한 생산 차질이 아니다. 그것은 사업 로드맵 전체의 붕괴를 의미한다. 공급 불확실성이 발생하는 순간 이들의 주문 물량은 경쟁사로 이동할 수밖에 없다. 더욱이 한번 이탈한 거래처는 파업 종료 이후에도 되돌리기 어렵다. 반도체 산업은 장기 계약과 공정 셋업을 기반으로 하는 구조다. 빈자리를 차지한 경쟁사들은 시장 지배력을 더욱 공고히 할 것이고, 삼성전자는 구조적 시장 상실이라는 혹독한 대가를 치를 수 있다.
가장 우려스러운 점은 이것이 삼성전자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삼성전자는 대한민국 반도체 생태계의 중심축이며, 그 안정성은 한국 수출과 산업 정책, 나아가 경제안보와 직결된다. 이는 특정 기업의 손실을 넘어 대한민국 전체를 ‘공급 리스크가 상존하는 불안정한 제조기지’로 각인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국가 신인도와 경제안보에 미치는 충격은 결코 가볍지 않다. 지금은 한국이 AI 반도체와 메모리 호황을 발판으로 글로벌 공급망 재편 과정에서 전략적 위상을 한 단계 끌어올릴 수 있는 결정적 시기다. 이 골든타임을 내부 갈등으로 허비한다면 그 비용은 기업의 손익계산서를 넘어 국가경쟁력 전체에 전가될 것이다. 삼성전자 노사는 이번 사태를 단순히 성과급 협상이 아니라, 고객사와 쌓아 온 신뢰와 국민 경제에 미치는 파급력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반도체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좌우할 핵심 기반이다. 정부도 파업을 막기 위해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극한 대치와 소모적 충돌이 아니라, 한국 반도체 산업이 세계 시장에서 가장 신뢰받는 공급자로 남기 위한 책임 있는 결단과 전략적 자제다.
이주형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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