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의 온기를 돕는 마늘의 힘[이상곤의 실록한의학]〈158〉

1 month ago 9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조선 중기의 명문장가였던 최립은 저서 ‘간이집(簡易集)’에서 ‘오신채(五辛菜)’에 대해 “파, 마늘, 생강 등 다섯 가지 매운맛이 나는 채소가 오신채인데, 예부터 새해를 축하하고 오장(五臟)의 기운을 돋우기 위해 먹는 풍습이 있어 왔다. 특히 마늘은 복통을 멎게 하며 생선과 고기의 소화를 도와주고 역병을 예방한다”고 적었다. 담통으로 고생하던 영조는 “마늘이 (평소 건강에는 좋지만) 담증에는 좋지 않다”며 “냄새 나는 음식은 먹지 않는다”고 질색한다. 기록으로만 보면 조선시대 마늘은 빈자(貧者)의 건강식이었음을 알 수 있다.

마늘은 기원전 139년 중국 한나라 무제 때 실크로드를 통해 서역에서 들어왔다. 실크로드는 무제가 중앙아시아(현 신장웨이우얼)의 월지국과 동맹을 맺기 위해 관리를 보내면서 개척한 길이였다. 그렇다면 단군신화에 나오는 마늘을 먹는 곰 이야기는 어떻게 된 것일까? 고조선이 기원전 4∼7세기 무렵 역사 무대에 등장했다는 중국의 역사 기록으로 보면 마늘이 그 당시에 동아시아, 즉 한반도에 존재할 수 없다.

단군신화 속 마늘이 달래일 가능성이 크다는 가설도 이 때문이다. 중국 명나라 시기 종합 약학서인 ‘본초강목’은 마늘과 달래의 뜻을 모두 가진 한자 ‘산(蒜)’을 달래 모양을 형상화한 글자로 풀이한다. 마늘을 예로부터 ‘대산(大蒜)’ 또는 오랑캐 나라(서역)에서 들어온 달래라 해서 ‘호산(胡蒜)’이라 불렀고, 달래는 ‘소산(小蒜)’으로 분류한 것도 그 방증이다.

마늘은 성질이 따뜻해 몸의 온기를 돕는 힘이 크다. 현대의학에서 보면 세균이나 바이러스에 의한 감염병 예방에도 도움이 된다. 본초강목은 마늘에 대해 “온역(溫疫·전염성 열병)을 해소한다”며 그 면역 효과를 강조했다. 14세기 서양에서도 전염병을 잡는 특효약으로 인정받곤 했다. 유럽에서 흑사병이 창궐했을 때도 영국 런던의 마늘 장수들은 멀쩡했다고 한다.

몸의 온기를 돕는 게 면역과 관계있다는 건 감기를 보면 알 수 있다. 감기는 한의학에서는 ‘상한(傷寒)’, 영어로는 ‘콜드(Cold)’라고 표현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차가움’을 감기의 원인으로 본 것이다. 감기에 걸리면 콩나물국을 먹고 땀을 내거나 쩔쩔 끓는 온돌방에 몸을 지지는 행동 또한 몸에 온기를 도와 바이러스를 물리치려는 지혜다. 불가(佛家)에서 마늘을 금지 음식 중 하나로 꼽는 것도 그 뜨거운 본성이 남자의 스태미나를 북돋우기 때문이다.

본초강목의 저자인 이시진과 중국 원나라 때 의학자인 왕정은 음식으로서의 마늘을 이렇게 평가했다. “음식의 부패를 막고 악취를 없앤다. 여름에 먹으면 더위나 습기의 피해를 막을 수 있으며 고기와 면류의 소화를 돕는다.” 부작용도 거론했는데, “날로 먹거나 오래 먹으면 간을 상해 눈이 손상된다. 눈병이 있는 사람은 피하는 게 좋다”고 했다.

현대의학의 연구 결과도 이런 평가에 힘을 싣는다. 매운맛의 알리신 성분은 항균 작용, 신진대사 촉진 작용, 피를 묽게 하는 항혈전 작용이 강한 것으로 증명됐다. 심지어 항암 작용을 한다는 논문도 적지 않다. 또한 마늘 속 스코르디닌 성분은 자궁을 따뜻하게 하는 등 부인병 예방과 치료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입춘이 지났지만 여전히 독감이 기승을 부린다. 한파를 이기고 독감을 예방하기 위해 비록 냄새는 좀 날지언정 마늘의 힘을 빌려 보는 건 어떨까.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Read Entire Arti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