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드마크 대 랜드마크] 프랭크 게리가 추구한 21세기 건축의 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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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한 가운데 거대한 배를 띄운 듯한 모습의 프랑스 루이비통 박물관.

숲 한 가운데 거대한 배를 띄운 듯한 모습의 프랑스 루이비통 박물관.

노아의 방주가 맞다. 프랑스 파리의 불로뉴 공원 한쪽에 자리한 루이비통 미술관을 처음 본 순간, 그것은 유리로 만든 거대한 배였다. 항구에서나 볼 법한 커다란 배의 정면이었다. 낮은 숲으로 둘러싸인 공원에 곡면의 유리 외피로 둘러싸인 우뚝 솟은 건물은 우리를 세상의 일과 근심으로부터 벗어나도록 이끌어주는 노아의 방주였다. 그것은 영혼을 씻으며 새로운 각오를 다지게 하는 재탄생의 기지였다.

[랜드마크 대 랜드마크] 프랭크 게리가 추구한 21세기 건축의 비전

이 건물을 의뢰한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은 원래 루이비통의 명품 철학보다는 영업력을 중시한다는 평을 받는다. 그가 이 건물을 프랭크 게리에게 의뢰했을 때 그의 주문은 “저를 위해 뮤지엄 건물을 지을 땅을 보러와 주세요”였다. 이 말 속에는 많은 의미가 있겠지만 그것은 루이비통을 위해서라는 뜻은 아니었다.

루이비통과 헤네시의 인수합병 과정을 통해 배척된 루이비통 일가의 정신이라 할 수 있는, 사각형의 가방과 LV의 로고로 대표되는 이미지는 이 건물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프랭크 게리라는 건축가의 독특하고 창의적인 건축형식인 자유로운 곡선과 비정형의 은유만이 비친다. 아르노 회장은 그것을 원했을 것이다. 새로운 기업의 이미지를 이끌어갈 새로운 건축, 그리고 항해할 배, 그것은 게리의 작품 성향과 맞았으며, 1억유로에서 8억유로로 공사비가 증액됨에도 불구하고 추진될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을 것이다.

독특한 디자인으로 대표되는 프랭크 게리는 캐나다에서의 어린 시절 할머니 집의 어항에 든 잉어와 장난을 치며 지내는 것을 좋아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말다툼 끝에 아버지를 주먹으로 쳐 쓰러뜨려 아버지가 후유증을 앓자 따뜻한 미국 LA로 이사해 택배기사를 하며 지역대학에서 디자인을 공부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이런 배경은 건축물에 생뚱맞게 잉어 조각을 설치하거나 건물을 날아갈 듯한 모양으로 만들고 잉어의 비늘 모양으로 건물 외피를 만드는 등, 현실에 저항하는 과감한 디자인 경향으로 나타났다.

또 그는 디자인할 때, 어렴풋한 이미지를 확정해간다는 표현을 많이 사용했다. 말을 달리는 듯한, 하늘을 나는 듯한, 구름을 잡는 듯한, 춤을 추는 듯한, 모두 움직이는 형상이다. 동적인 순간을 건축물이라는 확정된 형태로 만들어내고 싶어 하는 집념이 들어 있었다.

서울 청담동 명품거리 한복판에 자리한 ‘루이비통 메종 서울’. /한경DB

서울 청담동 명품거리 한복판에 자리한 ‘루이비통 메종 서울’. /한경DB

작지만 우리나라에도 그가 디자인한 건물이 하나 있다. 2019년 서울 청담동에 문을 연 ‘루이비통 메종 서울’이다. 플래그십 스토어와 미술관이 들어 있는 4층 건물이다. 기존의 상자형 건물을 게리가 리모델링했다. 새로 짓는 건물이 아니라서 그의 창의성이 그렇게 많이 반영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흘러가는 구름이나 춤추는 나비 같은 움직임이 느껴지기도 한다. 파리 루이비통 미술관 건물의 곡선 형태와 곡면 유리 등을 청담동 건물에 적용하려 했고, 그가 말하듯 수원화성의 북문 탑이나 동래학춤의 저고리 곡선의 흔들림, 이런 부분들을 형태적으로 반영하고자 했다고 생각된다.

그는 건물을 설계할 때, 그 지역의 역사적인 건물들이나 고대 조각상이나 춤, 자연의 모습으로부터 영감을 받는다고 했다. 델포이의 마부나 우리나라의 종묘 등을 언급하면서 그 감동으로 눈물이 났다고도 했다. 그러나 사실 자신이 디자인한 건물과 역사적으로 유추된 건물 사이에 형태적인 유사성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그의 디자인 원천은 건물의 겉모양이 아니라, 명작들 속에 숨겨진 인간의 숨은 손길에 대한 기억, 즉 건물을 짓는 과정에서의 정성스러움에 대한 감동이라는 생각이다.

그렇게 볼 때 청담동 건물은 그의 노력이나 의도가 엿보이기는 하지만, 워낙 작은 규모라 시원시원하게 뚫려 있어야 할 캐노피 같은 유리 천장 부분이 매우 협소하게 설계돼 있고, 한 층의 높이를 두세 개의 곡선으로 수평 분절하고 있다. 이 때문에 외부에서 볼 때의 층층으로 구분된 유선형 날갯짓 모양과는 달리 내부에서는 공간이 복잡하게 인식되는 아쉬움이 남는다.

많은 논란이 있지만 세계적인 여성 건축가 자하 하디드가 우리나라에 지은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건물이 도시 경관을 확 바꿔 놓은 것처럼, 게리가 제대로 설계한 건물이 우리나라에 하나 지어진다면, 도시 풍경을 바꾸고 사람들의 관심 속에서 미래를 내다보는 멋진 건축 자산으로 남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아쉽게도 프랭크 게리는 2025년 세상을 떠나 다시는 그의 새로운 작품을 볼 수 없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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