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전재성]한층 복잡해진 국제사회의 ‘北 비핵화’ 셈법

1 month ago 7

비핵화? 핵억제? 北 향한 이중적 美 메시지
우크라전, 미중 경쟁에 북핵 이해관계 복잡
국제질서 변화 속 韓 안보 지킬 방안 찾아야

전재성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전재성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비롯한 미 고위 인사들의 북한 관련 발언이 빈번하게 보도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과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은 북한을 ‘핵능력 보유국(Nuclear Power)’이라고 지칭했다. 최근 미일 정상회담 뒤 기자회견에선 “북한 김정은과 관계를 맺을 것”이라며 북-미 대화 추진 의사를 재차 천명했다. 흥미로운 점은 트럼프 대통령과 고위 인사들이 ‘북한의 비핵화’라는 표현을 직접 쓰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핵 문제에 관해 한반도의 안정을 추구하겠다는 언급만 반복한다.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은 북한을 ‘불량 국가(Rogue states)’라고 규정하며 역내 핵확산을 막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미국의 공식 성명에서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는 여전히 미국의 정책목표라는 점이 확인된다.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대변인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가 미국의 목표라고 설명했다. 최근 미일 정상의 공동성명에도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가 궁극적 목표로 명시됐다. 이러한 미국의 대북 정책은 혼란스러운 신호를 주고 있어 정리가 쉽지 않다.

첫째, 트럼프 행정부의 포괄적 대북 정책이 구체적으로 수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북-미 정상회담에 대한 의지가 표출되고 있다는 점이다. 루비오 국무장관은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근본적인 검토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러한 검토가 이뤄지기 전에 북-미 정상회담이 열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둘째, 미국이 북한을 핵 보유국으로 인식한다고 해서 합법적인 핵무기 국가(nuclear weapon state)로 인정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군사적 측면에서 실질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는 점이 강조되고 있다.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조 바이든 행정부는 전략사령부 회의를 통해 북한의 핵 사용을 억제하는 구체적인 대응책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핵무기 사용의 문턱이 낮아지는 환경에서 북한의 비핵화 목표에만 머물 수 없기 때문에 군사적으로 효과적인 억제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는 현실 인식이 반영된 것이다. 미국의 대북 정책 목표에서 북한의 비핵화가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러시아와 중국에 이어 미국을 위협하는 세 번째 핵 보유국이 된 북한에 대해 억제 전략을 강화할 필요성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셋째, 궁극적으로 북한의 비핵화가 목표라 해도 다양한 중간 지점을 통과해야 한다. 북한의 핵무기 고도화를 막기 위한 동결 방안, 핵전쟁 방지를 위한 위기 관리 및 군사적 억제, 비핵화 조치에 따른 대북 경제제재 해제 및 한반도 평화 보장 등 여러 요소가 구체적인 로드맵 속에서 실현돼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과 미 관료들은 완전한 비핵화를 협상의 전제로 내세우지 않고, 북-미 협상이 시작되기도 전에 좌초되는 것을 막기 위해 다양한 신호를 보내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의 고민은 깊어진다. 미국이 내심 북한을 핵무기 보유국으로 공인할 가능성이 있는지, 한국이 배제된 채 북-미 정상회담이 열릴 것인지, 북-미 정상회담 결과 ‘스몰딜’과 같이 예측할 수 없는 결과가 나타날지 등의 문제가 지적된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점은 북한의 핵군사력이 가져오는 문제가 한반도를 넘어서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과 경쟁, 대립 관계로 치닫는 두 핵무기 국가인 러시아와 중국은 북한과 긴밀히 협력하고 있다. 미국은 중-러 양국에 대해 동시적 핵억제를 추진해야 하는 초유의 상황에서 북한의 핵까지 함께 고려해야 한다. 미국은 자신의 본토 안보를 위해 북한의 비핵화뿐 아니라 억제 전략을 병행할 수밖에 없다.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을 위해 러시아에 파병된 북한군의 철수를 추구하는 것은 미국과 유럽의 공동 목표이다. 이란을 비롯한 수정주의 세력들에게 북한의 핵·미사일 기술이 이전되는 것을 차단하는 것도 중요한 국제적 과제가 되고 있다. 한국은 북한의 비핵화를 추구하고 우리의 안보를 철저히 하며 한반도의 안정을 추구하지만 이제 이러한 목표의 우선 순위가 국제사회에서 자동적으로 보장되지는 않는다.

한국은 북한의 비핵화를 추구하되 중간 단계의 국제적 이익구조가 한층 복잡해졌음을 인식해야 한다. 무엇보다 미국과 안보이익의 긴밀한 연결고리를 재정비해야 한다. 중국, 러시아 등 수정주의 강대국들과 대치하는 트럼프 대통령은 자국 억제력을 강화하면서 북-중-러 협력의 약한 고리인 북한과 협상을 시도할 수 있다. 북한과 주고받기식 비핵화 로드맵만을 고민하던 과거와 달리 미국의 본토 안보, 우크라이나 전쟁의 향방, 미중 전략 경쟁 속 북한의 전략적 지위 등을 함께 고려하며 우리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도록 조정안을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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