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전재성]‘뉴스타트’ 만료, 무법의 핵 시대가 열렸다

13 hours ago 2

우크라戰-美中경쟁에 핵통제 공백 시대로
강대국도 안 지키는데, 핵자강 유인 커져
국지전 격화되며 핵 충돌로 번질 위험 높아
체제 복귀 위한 단합된 국제 압박 절실해

전재성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전재성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2월 5일, 지구상에서 가장 강력한 핵 강국인 미국과 러시아를 묶어 뒀던 마지막 법적 가드레일인 ‘신전략무기감축조약(New START·뉴스타트)’이 만료됐다. 군비 통제의 공백이 생기면서, 인류가 지난 반세기 동안 쌓아온 핵 질서는 불확실성 속으로 빠져들었다. 강대국들의 핵무기 숫자 싸움이 우리 삶과 무관한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전략적 인과의 고리를 따라가 보면 우리의 생존에 직접적인 지각변동을 일으키는 사안이다.

미-러 양국은 냉전의 절정기이던 1972년 첫 핵군비 통제 협정인 ‘전략무기제한협정 1(SALT I)’을 체결했다. 이 협정은 서로를 완벽히 파괴할 수 있다는 상호확증파괴(MAD)의 공포를 관리하려는 계산의 산물이었다. 2010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은 이를 계승해 뉴스타트를 통해 탄두 1550기와 운반체 700기라는 구체적 제한선을 설정했다. 상호 현장 사찰, 데이터 교환, 통지 의무 등 상대 핵전력의 규모와 구성을 지속적으로 확인할 장치도 뒀다. 그러나 이제 반세기 만에 처음으로 강대국 간 핵무기에 대한 어떠한 합의도 없는 ‘무법의 핵 시대’를 맞이하게 됐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미중 전략경쟁 속에서 미국, 러시아, 중국 간 핵무기 경쟁은 상한 없이 치열해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상호취약성에 기반한 강대국 간 타협 대신 압도적 핵전력 우위를 추진하고 있다. 33년 만의 핵실험 재개 선언과 전술핵의 대량생산, 그리고 인공지능(AI)을 통합한 차세대 지휘·통제·통신체계(NC3) 구축 등의 정책을 표방했다. 우주 기반 미사일방어망인 ‘골든돔’ 구상은 상대의 공격을 무력화해 절대적 우위를 점하려는 야심 찬 시도다. 트럼프 대통령은 뉴스타트를 미중 전략경쟁 시대에 미국의 발을 묶는 협정이라고 비판하며, 중국을 포함한 3자 핵군축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작년 9월 뉴스타트의 1년 연장을 제안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의 골든돔 구상과 협정에 대한 비판을 핑계로 극초음속 미사일과 핵추진 순항미사일 등 신형 무기체계 개발 및 실전 배치로 선회하고 있다. 핵보유국의 지원을 받는 비핵국의 공격을 공동 공격으로 간주한다는 공세적 핵 독트린도 발전시킬 전망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중국의 입장이다. 과거 중국은 생존 가능한 최소 전력만을 유지하는 최소 억제전략을 고수해 왔으나, 점차 강력한 전략적 억제 체계 구축으로 노선을 수정하고 있다. 현재 500여 기 수준인 핵탄두를 2030년까지 1000기 이상으로 늘리고, 미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다탄두 미사일과 차세대 핵잠수함 등 3대 핵전력 완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중국은 그간 미-러와의 핵무기 격차를 들어 3자 군비 통제 참여를 반대해 왔다. 뉴스타트 만료로 중국은 이를 핵전력 현대화의 기회로 삼을 공산이 크다. 첨단 AI 기술과 극초음속 무기체계를 결합한 중국의 핵 굴기 이후, 미-중-러 간 핵무기 경쟁의 끝을 예측하기는 어려워졌다.

핵무기를 갖고 있지 않은 비핵국가에 강대국 간 핵 무한경쟁은 명백히 부당한 현실이다. 1970년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 출범 당시 핵 강대국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인정받는 대가로 핵능력 증강, 즉 수직적 핵확산을 멈추고 군축에 매진하겠다는 국제법적 의무(제6조)를 약속했다. 1972년의 SALT I 협정은 그 약속을 이행하기 위한 첫 노력이었다.

그러나 뉴스타트마저 사라진 지금, 비핵국가들을 묶어 뒀던 비확산의 규범적 효과는 약화될 수밖에 없다. 당장 4월 미국 뉴욕에서 열릴 제11차 NPT 평가회의는 강대국들의 책임 불이행에 대한 비판의 장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핵 강대국들이 확장억제라는 안보 공약을 약화하거나 비핵국가들을 향한 핵 위협을 노골화하면, 비핵국가들이 핵 자강의 길을 택하는 것을 막을 명분은 사라진다. 특히 우려스러운 대목은 중국의 핵 증강이 부를 지정학적 연쇄 반응이다. 미중 간 핵 균형, 즉 상호확증파괴가 성립되면 역설적으로 역내 군사 대결은 더욱 가속화될 수밖에 없다. 이른바 안정-불안정의 역설이다. 중국은 미국과의 핵 균형 속에서 미국의 대중 군사봉쇄선으로 통하는 ‘제1도련선’ 부근에서 더욱 공세적인 회색지대 전략과 재래식 작전에 나설 군사적 기반을 갖추게 된다. 트럼프 행정부는 제1도련선 방어를 강조하며 동맹국들의 역할 증대를 압박하고 있다.

그러나 강대국 간 무한 핵 경쟁 속에서 국지적 충돌이 핵 에스컬레이션으로 번질 위험은 어느 때보다 높다. 강대국들이 무책임한 군비 경쟁을 멈추고 새로운 합리적 통제 체제로 복귀하도록 국제사회의 강력하고 단합된 압박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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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성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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