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성장률 지속 하락, 2040년경 0% 전망
생산성-성장 둔화 깨려면 혁신, 도전 필요
높은 경제 보상 탓 의대 쏠림 현상 심각해
보상체계 개편 통해 인재 진출 다양화해야
이러한 성장 둔화의 원인으로는 노동력과 자본 투입의 감소뿐 아니라 이 두 자원을 얼마나 잘 활용하느냐를 뜻하는 총요소생산성의 정체가 크게 작용하고 있다. 따라서 앞으로의 경제성장은 생산성을 얼마나 끌어올릴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생산성을 높이려면 기술 개발, 혁신기업의 성장 그리고 경제·사회 제도의 역동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이 모든 것은 청년들이 기술과 혁신에 더 적극적으로 도전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요인이기도 하다.
그런데 한국 사회에서는 최상위권 청년 인재들의 의대 쏠림 현상이 매우 심각하다. 단순히 인기가 높다는 수준을 넘어 상위권 학생 대다수가 의대를 지망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더 이상 개인의 진로 선택 문제로만 보기 어렵다. 이는 의사라는 직종이 단순히 직업 안정성이 높아서가 아니라 사회적 보상과 경제적 이익 측면에서 다른 과학·공학 분야에 비해 크게 우대받는 데 따른 귀결이기 때문이다. 이는 국가의 미래 생산성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구조적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에 따르면 한국에서 의사의 평균 연봉은 구매력평가지수(PPP) 기준 연간 19만2749달러(약 2억6000만 원)로, OECD 회원국 중 거의 최고 수준이다. 개원의의 경우 평균 연봉이 29만8800달러(약 4억1000만 원)에 이른다.이에 비해 필자가 최근 방문한 핀란드에서는 의사와 일반 박사학위 소지자의 연봉이 큰 차이가 없었다. 고급 기능공(용접 기술자, 자동화 엔지니어 등)의 연봉과도 별다른 격차가 없었다. 사실 유럽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의사의 연봉이 다른 기술 직업군과 크게 차이 나지 않는다. 이러한 구조는 직업 간 위계 의식을 낮추고, 인재가 다양한 과학기술 분야로 고르게 진출하도록 하는 효과를 낸다.
미국과 영국의 주요 대학들은 인재 유입이 특정 학문에만 편중되지 않는 모습을 보여 준다. 미국의 하버드대, 매사추세츠공대(MIT), 스탠퍼드대 같은 대학에서는 의대뿐 아니라 공학, 컴퓨터과학, 생명과학 등 다양한 첨단 분야에도 꾸준히 우수 인재가 진입하고 있다. 영국의 옥스퍼드대와 케임브리지대 역시 마찬가지다. 이들 대학에서는 철학, 수학, 물리학, 생물학 같은 기초학문 분야로도 최고 수준의 학생들이 고르게 진학하는 경향을 보인다. 물론 이들 나라에서도 의대 진학에는 여전히 경쟁이 치열하다. 하지만 한국처럼 의학 계열에만 인재가 지나치게 몰리는 극단적인 현상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는 결국 학문 간의 보상 구조와 사회적 위상이 균형 있게 조성돼 있다는 점과 무관하지 않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는 국립보건원(NIH)이 후원하는 공학-의학박사 연계 프로그램이 적극 활용돼 학부에서 물리학, 수학, 전자공학 등을 전공한 인재들이 의사이자 과학자로 활발히 배출되고 있다. 물리학자가 자기공명영상(MRI)의 원리를 의대생에게 가르치고, 전자공학이나 인공지능(AI) 분야 박사는 로봇 수술 시스템과 관련된 기술을 교육하는 의대 교수로 활동한다. 컴퓨터과학자는 의료 AI, 디지털병리학 교수로서 의대생에게 강의한다. 물론 한국에서도 일부 이러한 융합적 진출이 이뤄지고 있으나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후원과 대학 입시 분위기, 경제적 인센티브 구조 등에 있어 이들 국가와는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한국은 급변하는 글로벌 기술 환경에 노출돼 있고 지금은 반도체, AI, 양자과학, 우주산업 등 전략적 핵심기술 분야에서 경쟁력을 위협받고 있다. 이미 반도체, AI, 우주산업 등 미래 핵심 분야에서 박사급 인재 부족 문제가 제기되고 있는 현실이다. 지금이야말로 의대 편중 현상의 구조적 대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젊은 청년 인재들이 의대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로 기꺼이 지망할 수 있는 환경, 즉 의사가 아니어도 다른 여러 과학기술 분야에서 충분한 보상과 명예를 얻을 수 있는 사회 구조를 만드는 일, 이것이야말로 생산성을 높여 한국의 지속 가능한 미래를 열어 갈 핵심이 될 것이다.
송인호 객원논설위원·KDI 경제교육·정보센터 소장
© dongA.com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좋아요 0개
- 슬퍼요 0개
- 화나요 0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