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에 100만 명 이상의 소상공인이 망하는 폐업의 시대다. 신규 창업 대비 문을 닫는 자영업자 비율은 80%에 육박한다. 불황 탓에 사업을 접는 사람은 넘쳐나는데 그들을 받아줄 곳은 많지 않다. 중소기업중앙회 조사 결과 폐업자의 61.2%가 심각한 경제적 곤란을 겪는다. 43.8%는 재기할 엄두조차 못 내는 실정이다.
패자 부활이 어려운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신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도 잘 알고 있는 듯하다. 한성숙 중기부 장관은 취임 일성으로 소상공인의 사회안전망 구축을 최우선 과제로 삼겠다고 했다. 그는 “(소상공인이) 폐업 단계까지 가기 전에 상황이 안 좋으면 미리 조금씩 정리할 수 있게 데이터를 구축해 놓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회복 지원을 체계화해 폐업 이후 새로운 가게를 하거나 재취업을 할 수 있도록 돕겠다”고 약속했다.
5%만 혜택받는 사회
한 장관이 소상공인 부활을 위한 첫 단추로 질서 있는 폐업 방안 마련을 거론한 것은 적절한 상황 인식이다. 그간 정부의 소상공인 정책은 캐비닛 속 옛 보고서를 재탕 삼탕하는 수준이었다. 그러다 보니 인력·예산 부족을 핑계로 폐업자 지원에는 소극적으로 대처하기 일쑤였다. 폐업 전 대비는커녕 사후 지원도 턱없이 부족했다. 정부가 대표 사업으로 내세우는 ‘희망리턴패키지’는 폐업자 중 5% 남짓만 이용할 수 있다. 폐업자의 95%가 제도권 밖에서 방치되고 있다는 얘기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제대로 된 폐업 지원 매뉴얼이 없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임대차 계약 종료, 권리금 회수, 금융 채무 정리, 철거 협상 등을 혼자 해결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벼랑 끝에 있는 폐업자가 이런 어려움을 혼자서 잘 해결할 리 만무하다. 빨리 정리하고 싶은 마음이 앞서 대부분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모든 걸 내려놓게 된다고 한다.
폐업자의 이런 정서적 고립 상태를 악용하는 브로커도 많다. 보증금을 못 받거나 권리금을 떼이는 자영업자가 부지기수다. 여기서 발생하는 법률적 분쟁은 오롯이 폐업자가 감당할 몫이다. 정신적 압박이 커지고 경제적 생활 기반이 붕괴해 재취업이나 재창업은 꿈도 꾸지 못한다.
허점많은 정부 지원
고령자와 외국인 사업자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이들은 디지털 접근성이 떨어지고 행정 이해도가 낮아 아예 정부 지원 제도조차 잘 알지 못한다.
한 장관은 네이버 최고경영자(CEO) 출신답게 폐업 문제를 해결하는 데 디지털과 인공지능(AI)을 활용하겠다고 한다. 오프라인 상담을 기피하는 폐업자들의 심리를 잘 알기 때문이다. 가게를 접은 직후 자신의 실패담을 공무원 등 제3자에게 허심탄회하게 얘기할 수 있는 이는 드물다. 시간이 지나야 대인기피증이 누그러지고 아픈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이들을 위해 디지털과 AI를 통해 원격으로 폐업 및 재기 지원 상담을 해주는 게 필요하다. 관련 노하우가 있는 민간 기관이나 기업과도 정부가 과감하게 손잡는 방안을 검토해 볼 만하다.
소상공인 폐업 지원은 창업과 마찬가지로 정부 정책의 중요한 부분이다. 편하게 창업하고 여의찮으면 좀 더 쉽게 퇴로를 찾을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래야 한 장관의 약속대로 패자 부활이 가능한 사회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