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진짜 어른의 조건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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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진짜 어른의 조건은 무엇인가

얼마 전 한 금융회사 대표와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는 미국발 ‘관세 폭탄’에 따른 불확실성과 국내 계엄·탄핵 사태로 인한 정치적 혼란 등을 걱정했다. 난세(亂世) 속 나라 경제와 금융 시스템, 외교·안보, 신인도 등에 대한 우려 섞인 대화가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한숨만 내쉬던 그는 대화 말미에 옅은 미소를 띠며 불쑥 ‘어른’ 얘기를 꺼냈다. 이어령 선생 이후 ‘어른 부재’ 시대를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자기 고향인 경남 진주에 평범하지만 큰어른이 있다고 했다. 험난한 시대, 그 어른을 떠올리면 작은 위로가 된다는 말도 보탰다.

평범한 어른의 묵직한 울림

그 어른은 진주에서 60년 가까이 ‘남성당 한약방’을 운영했다. 비교적 싼값에 한약을 팔아 많은 사람이 몰렸고 꽤 큰돈을 벌었다고 한다. 그런데 돈을 모으진 않았다. 주변 학생 1000명 이상에게 장학금으로 나눠 주고 생활비까지 댔다. 1984년에는 사재 110억원을 들여 명신고등학교를 설립한 후 조건을 달지 않고 나라에 헌납했다. 그는 2022년 한약방 문을 닫을 때까지 교육·사회·문화·언론 등 다양한 분야에 돈을 거름으로 뿌렸다. 가끔 감사의 마음을 전하러 온 이들에겐 “사회에 갚으면 된다”는 말만 남겼다고 한다. ‘어른 김장하’ 얘기다.

그의 삶은 책을 통해 알려지기도 했다. 다큐멘터리 영화로도 제작됐다. 2023년엔 이 다큐멘터리가 이례적으로 백상예술대상 수상작에 올랐다. 급기야 전국 각지에서 그의 자취를 돌아보는 ‘성지순례’ 현상까지 나타났다고 한다.

그에게 장학금을 받은 학생들은 학자, 법조인, 기업인 그리고 평범한 사람으로 성장해 각자 자리에서 사회를 지탱하고 있다. 지난 18일 퇴임한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도 그중 한 명이다. ‘어른 김장하’가 뿌린 선한 영향력은 사회 곳곳을 누비는 나비가 됐다. 그리고 먹고살기 힘든 팍팍한 이 시대, 평범한 이들의 마음을 다독여주는 작은 신드롬이 됐다.

'나는 어른인가' 되돌아보자

‘어른 김장하’는 단지 베풂을 받은 이들한테만 향하는 울림이 아니다. 좌우 극단의 세력에 기대 배지를 움켜쥐고 있는 정치인, 영혼을 내려놓은 관료, 돈 한 푼에 목매는 장사꾼, 그리고 평범한 우리 아버지 어머니 아들딸 모두에게 울리는 묵직한 범종(梵鐘)과 같다.

울림은 하나의 질문을 던진다. ‘어른’이란 말이 ‘꼰대’로 여겨져온 이 시대, 과연 ‘진짜 어른’의 조건은 무엇인가. 정답이 있는 건 아니다. 분명한 건 나이와 사회적 지위, 가진 돈이 어른임을 결정하진 않는다는 점이다. 좌우 진영에 쏠린 유튜브 알고리즘의 노예가 아니라 사회 통념에 부합하는 철학과 신념을 갖고 행동에 옮길 줄 알아야 어른이다. 그 과정에서 주변 사람의 말을 경청(傾聽)하고 소통해야 한다. 설령 생각이 달라도 존중할 필요가 있다. 그게 배려와 나눔, 희생의 시작이라고 믿는다. 무엇보다 자기 말과 행동에 책임질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얻을 수 있다. ‘진짜 어른’이 되는 길이다.

옳고 그름이 불분명해진 시대. 우리 모두 자신에게 끊임없이 물어보자. 그냥 나이를 먹고 있는지, 어른이 돼가고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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