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이 잔인해진 배경을 설명하려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론할 수밖에 없다. 당시 위기의 진원국인 미국 정부는 금융의 탐욕을 제어하겠다며 월가 죽이기에 나섰다. 입법자 이름을 딴 ‘도드-프랭크법’을 통해서였다. 은행이 고객 돈으로 위험한 투자를 못하도록 더 강한 자본·유동성 규제를 신설했다. 은행 부실이 국민 부담으로 번지는 일을 막자는 취지였다. 이른바 ‘이익의 사유화, 손실의 사회화’를 없애야 한다는 데 이견이 없었다.
건전성 규제 주도한 한국
국제적으로도 비슷한 공감대가 퍼졌다. 금융위기 재발을 방지하려면 은행 건전성을 강화하는 새로운 국제 기준이 필요하다고 중지를 모았다. 중심은 신흥국을 포함한 주요 20개국(G20)이었다. 2010년 G20 정상회의에서 각국 정상은 국제결제은행(BIS)이 마련한 새로운 금융 건전성 규제 방안인 바젤Ⅲ 도입에 합의했다. 은행은 더 많은 자본을 쌓고 고강도 스트레스 테스트를 통과해야 했다.
가뜩이나 힘든 때라 대부분 바젤Ⅲ 적용을 꺼려 했다. 이때 총대를 멘 나라가 한국이었다. G20 의장국으로 모범을 보여야 한다며 바젤Ⅲ를 먼저 받아들였다. 2013년부터 보통주자본비율(CET1), 경기대응완충자본, 유동성커버리지비율(LCR) 등 신종 건전성 규제를 발 빠르게 적용했다. 한술 더 떠 2017년 바젤Ⅲ 최종안 전면 시행에도 앞장섰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이 이런저런 이유로 도입을 늦췄지만 한국은 일본과 함께 세계 최고의 금융 건전성 국가로 발돋움했다.
강력한 건전성 규제는 다른 문제를 낳았다. 은행 입장에서 담보가 확실한 주택담보대출과 초우량 차주 대출은 자본 부담이 작다. 이에 비해 중금리 대출은 위험가중자산을 늘리고 충당금을 더 쌓게 만든다. 연체라도 발생하면 CET1 비율이 흔들린다. 건전성 규제가 은행이 중금리 대출을 꺼릴 수밖에 없는 요인이 된 것이다.
고객 정보 활용은 제한
은행의 발목을 잡는 또 다른 규제는 개인정보 이용 법규다. 은행과 증권사, 카드사 등 업권별로 벽이 쳐져 있어 서로 고객 데이터를 쓸 수 없다는 게 금융권의 공통된 설명이다. 가령 KB금융지주 산하의 국민은행이 KB국민카드 매출이 많은 식당 주인에게 대출하고 싶어도 카드사 개인 정보를 대출에 활용할 수 없다.
금융 이력이 부족한 ‘신파일러(thin filer)’를 좀 더 많이 제도권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마이데이터’라는 대안이 나왔지만 무용지물이었다. 개인이 원할 때 본인의 금융 정보를 금융회사에 제공해 금융 소외계층을 줄이겠다는 의도였다. 그러려면 핵심 사업자에게 정보를 집중시켜야 했지만 특혜 소지가 있다는 이유로 수십 개 업체에 마이데이터 사업권을 줬다. 특정 이용자 데이터를 활용하려면 모든 사업자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데 개인이 그렇게 한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했다.
국내 은행이 돈 안 되는 중금리 대출에 소극적이었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오롯이 은행만의 잘못은 아니다. 촘촘한 건전성 규제를 만든 정치인과 관료 그리고 이익을 우선시한 은행의 합작품에 가깝다. 그런 점에서 모두가 잔인한 금융의 공범인 셈이다. 이를 인정하고 과도한 건전성 규제와 탐욕을 정상화하는 데 동참할 때 잔인한 금융이 포용금융에 가까워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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