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신임 과기정통부 장관의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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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신임 과기정통부 장관의 조건

이재명 정부의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을 누구로 할 것인가. 쉬운 듯 쉽지 않은 질문이다. 윤석열 정부는 쉬운 길을 택했다. 반도체가 한국을 먹여 살릴 산업이라고 다들 얘기하니 반도체 석학들을 장관 자리에 앉혔다.

교수 출신 과기정통부 장관의 장점은 꽤나 명확했다. 관료의 시각에서 교수 장관은 ‘지나가는 과객’이다. 연구실에서 연구에만 매진한 이들이 약 30조원에 달하는 국가 연구개발(R&D) 예산을 조목조목 들여다볼 리 만무했다. 대통령 등 조각(組閣)팀 입장에서도 교수가 편했다. 극한의 정치적 대립 속에서 청문회를 통과하려면 도덕적으로 흠결이 거의 없는 학계 인물이 무난했다.

30조원 R&D 예산의 집행자

윤 정부는 두 번의 교수 장관을 기용해 시쳇말로 과학기술 정책을 난도질했다. ‘R&D 카르텔’이란 희한한 프레임을 만들더니 국가 R&D 예산을 일괄 삭감했다. ‘과학기술과 혁신을 통한 빠른 성장으로 양극화와 사회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취임 공약은 흐지부지됐다. 민관합동 과학기술위원회 설치, 과학기술 전략 로드맵 신설 등 2022년 윤 정부의 약속은 모두 폐기됐다. 조금의 과장을 보태 윤 전 대통령이 지킨 건 딱 하나다. ‘대통령이 직접 챙기는 과기정책’.

교수 장관들은 이 과정에서 저항 한번 제대로 못 했다. 연구비 삭감 광풍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서울대 공대 교수들조차 ‘과학기술계의 계엄령’이라고 비판했지만, 국무회의 어떤 기록에서도 과기정통부 장관이 반대했다는 흔적은 찾기 어렵다. 이 과정을 흑서(黑書)로 세세하게 남긴 더불어민주당조차 누가 어떤 이유로 대통령의 결정에 관여했는지 밝혀내지 못했다.

정보통신부와 과학기술부를 합친 현재의 과기정통부는 국가 R&D 예산을 총괄하는 데다 개인정보, 보안, 방송통신 정책까지 더해진 거대 부서다. 장관이 이 모든 걸 이해하고 조율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국제경영개발원(IMD) 국가 경쟁력 평가 순위에서 한국은 종합 27위(2022년)라는 낮은 성적표를 받았는데 특이하게도 과학 인프라 분야에선 3위를 기록했다. 정부 살림 대비 과학기술에 많은 예산을 쏟아붓고도 제대로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얘기다.

정치에 종속되던 과기 정책

땅을 파봐야 기름 한 방울 안 나는 나라에서 한국인은 ‘과학기술입국’을 흔들리지 않는 철칙으로 삼았다. 이재명 대통령이 공약 상단에 ‘AI 3대 강국’ 등 과학기술 정책을 대거 올려놓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용두사미로 끝나지 않으려면 적확한 인사로 공약을 실행에 옮겨야 한다.

의외로 진보를 표방한 정부는 과기정책을 총괄하는 자리에 기업인을 선임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삼성전자 출신 진대제 장관을 기용했고, 문재인 정부는 LG전자 출신인 유영민을 초대 과기정통부 장관에 임명했다. 유 전 장관은 지금도 관료들 사이에서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별할 줄 알았던 장관”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이재명 정부의 과기정통부 장관은 특정 산업에 대한 높은 지식을 가진 인물이 아니라 갈등을 조정하고, 타협을 이끌어내면서 한정된 자원으로 최대 성과를 거둘 수 있는 고도의 조직 관리와 실행력을 갖춘 인물이어야 한다. 그래야 과학기술이 정치에 종속되곤 하던 대통령 임기 중후반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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