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문화강국의 꿈, 공짜 점심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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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문화강국의 꿈, 공짜 점심은 없다

한국 현대사의 문화예술 분야에서 뚜렷한 성과를 남긴 대통령을 꼽으라면 박정희 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을 거론하는 이들이 많다. 박 대통령은 1972년 ‘문화예술진흥법’을 제정했고, 이후 5년에 한 번씩 문화예술 진흥 계획을 수립해 실천에 옮겼다. 서울 광화문에 세종문화회관을 건립한 것도 박 대통령이다. 김 대통령은 외환위기 와중에 집권했지만 정부의 전체 예산에서 문화 예산이 차지하는 비중을 처음으로 1%대로 끌어올렸다. 문화산업이 한국의 차세대 성장산업이 될 것으로 보고 ‘문화산업진흥 기본법’을 마련하기도 했다.

문화 대통령의 전제조건

이재명 대통령도 대선 후보 시절부터 문화예술 분야에 적지 않은 관심을 표명했다. 대선 출마 선언 때 소프트파워 측면에서 세계를 선도하는 나라를 만들 것이라며 문화강국을 핵심으로 하는 ‘K-이니셔티브 비전’을 제시했다. 지난달 30일엔 토니상 6관왕에 오른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의 박천휴 작가,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의 김원석 감독 등 문화예술계 인사를 초청해 문화산업 발전방안에 관한 대화를 나눴다. 성남시장, 경기지사 등을 거치면서 문화예술 분야에는 특별한 관심을 보인 적이 없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의외의 행보로 받아들여진다.

그런데 이 대통령이 대선 과정에서 제시한 문화예술 분야 공약들을 뜯어보면 윤석열 정부 시절 만든 ‘문화한국 2035 비전’과 큰 차이가 없다. 콘텐츠산업 세제 지원 및 정책금융 확대, K컬처 글로벌 브랜드화, 국내 콘텐츠 플랫폼 해외 진출 지원 등의 정책과제가 구체적인 표현만 다를 뿐 공통으로 포함돼 있다. 문화예술 분야는 외교 안보 노동 환경 등 여타 분야와 달리 진보와 보수 간의 견해 차이가 크지 않다. 중요한 건 실행 의지다.

문예진흥기금 대안 마련해야

이 대통령이 문화예술 진흥에 얼마나 진심인지를 가늠해 보려면 문화예술진흥기금 고갈 문제를 어떻게 처리하는지 보면 된다. 문화예술진흥법을 근거로 1973년 조성된 문예진흥기금은 예술 창작 역량 강화, 예술 향유 기회 확대, 지역 문화예술 진흥 등에 쓰인다. 주된 재원은 영화관, 공연장, 문화재 등의 입장료에 일정 비율로 매기는 부담금이었다. 하지만 2003년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으로 부담금이 폐지됐고, 이 여파로 2004년 말 5273억원이던 기금 적립금은 2023년 말 626억원으로 쪼그라들었다.

문화예술계에서는 그동안 문예기금 정상화를 위한 대책 마련을 줄기차게 요구해왔다. 정부는 일반회계나 복권기금과 같은 다른 기금에서 전입금을 끌어오는 방식으로 매년 부족분을 메꿔왔다. 하지만 이런 땜질 처방으로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

전문가들은 이미 다양한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타기금에서 전입받는 재원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방안, 부가가치세 등 간접세의 일부를 문예기금으로 조성하는 방안, 문화세를 간접세로 신설하는 방안 등이 논의돼왔다. 정부의 적극적인 의지만 있으면 기금 고갈 문제는 해결할 수 있다는 얘기다. 순수예술을 지원하는 국내 유일 기금의 재정 불안으로 문화예술계 전반이 위축된다면 이 대통령이 목표로 내건 문화강국 비전은 공염불이 될 수밖에 없다.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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