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 사회에서 비정규직 근로자와 비경제활동인구를 중심으로 정부와 현 체제에 대한 불만이 높아지고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는 낮은 임금과 고용 불안정, 차별 대우 등으로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고 있으며 청년층을 포함한 많은 사람이 아예 구직을 포기하고 경제 활동을 떠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노동시장 양극화와 기회 부족에 기인한 것으로 방치할 경우 사회적 갈등과 활력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
2024년 비정규직은 약 846만 명 규모로 전체 임금근로자의 38.2%를 차지했다. 비정규직 임금은 정규직의 54% 수준에 불과하며, 이는 동일한 노동을 하고도 절반 정도의 임금과 적은 복리후생을 받는 현실이 지속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비경제활동인구 역시 최근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비경제활동인구란 일할 능력이 있고 취업 의사도 일부 있지만 구직 활동을 하지 않는 사람을 의미한다. 취업준비생, 취업을 단념한 구직포기자, ‘그냥 쉼’ 상태 등의 응답자까지 포함하는 개념이다. 2024년 7월 기준 대학교(전문대 포함) 졸업 이상의 학력을 가진 비경제활동인구가 무려 405만8000명에 달해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한국 사회의 노동시장은 여전히 정규직 중심의 배타적 구조를 갖고 있다. 공공부문과 대기업 정규직 중심의 고임금·고복지 체계는 비정규직·청년·고령층·여성 등 다양한 취약계층의 진입을 막는 장벽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로 인해 수많은 인력이 노동시장 외부로 밀려나고, 그냥 쉼 상태로 분류되는 청년들은 국가 경제의 미래를 담보할 동력조차 상실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노동조합은 정규직 중심의 기득권을 고수하며 구조적 개편 논의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 왔다. 일부 대기업 정규직 노조는 내부 고용 안정만을 목표로 삼고 외부 취약계층과의 연대나 포용적 고용에 대한 관심은 부족한 실정이다.
이 같은 배타적 구조를 깨기 위해서는 더 이상 이상적 담론에만 기대서는 안 된다. 예컨대 동일노동 동일임금이라는 원칙은 그 자체로는 정의로우나 이를 경직된 방식으로 법제화하면 정규직 임금의 하향 평준화와 기업의 채용 기피로 이어질 수 있다. 마찬가지로 정규직 전환 압박이 현실을 무시하고 강제되면 기업은 오히려 채용을 줄이고 외주화 또는 자동화로 대체하려고 할 것이다. 따라서 실효성 있는 정책은 현실을 전제로 한 유연한 접근이어야 한다. 그중에서도 눈여겨봐야 할 것은 비정규직 전반을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는 제도적 프레임이다. 이는 정규직의 고용 특권을 그대로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해고 요건은 완화하되 처우와 임금 수준은 일정 수준으로 보장하는 중간형 고용 모델을 제시하는 방식이다. 즉 고용안정성과 노동 유연성의 균형을 맞추는 현실적 방안이다.
무기계약직은 비정규직의 고용 불안 해소와 경력 개발의 연속성을 가능하게 하면서도 기업에는 일정 수준의 유연성을 부여한다. 이 같은 모델은 이미 일부 공공기관이나 지방자치단체에서 시범적으로 도입하고 있으며, 사적 기업에서도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의 일환으로 확산이 가능하다. ESG는 단순한 사회공헌을 넘어 기업 지속가능성과 사회적 책임 이행의 척도가 됐고, 글로벌 투자자의 관심이 집중되는 분야이기도 하다. 비정규직의 무기계약직 전환은 바로 이 ‘사회’ 부문에서 ESG 평가를 높일 수 있는 구체적 수단이며, 기업의 평판 자산을 제고하는 실질적 투자이기도 하다.
결국 한국 사회가 겪고 있는 청년 구직 포기, 비정규직의 만성적 박탈감, 노동시장 이탈 현상은 더 이상 ‘개인의 의지 부족’이나 ‘일시적 경기 위축’으로 설명할 수 없다. 이는 구조의 문제이며, 그 구조는 기득권의 양보 없이 변화할 수 없다. 비정규직과 비경제활동인구의 불만을 해소하려면 그들의 절망을 덜고 희망을 만들어야 하며, 현실적이며 지속가능한 중간 지대의 고용 모델이 반드시 필요하다. 법과 제도가 이상을 그리는 도구에 머무르지 않기 위해서는 현실의 눈으로 고용시장을 바라보고, 정부와 민간이 함께 실천 가능한 해결책을 모색하는 일이 우선돼야 한다. 이는 단지 한 세대의 고용 안정이 아니라 한국 경제의 미래 경쟁력과 직결되는 과제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