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트럼프 100일에 금 간 美 백년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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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칼럼] 트럼프 100일에 금 간 美 백년탑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재집권한 지 100일이 지났다. 대통령 중심제에서 첫 100일은 핵심 통치 방향을 엿보게 한다. 트럼프 1기 때와 달리 충성파로만 조각한 2기 정부의 거침없는 정책 추진은 미국 사회와 세계 질서, 글로벌 경제에 격랑을 일으켰다.

트럼프 대통령은 예상 밖 수준의 국내외 조치를 쉴 새 없이 쏟아내고 잦은 번복으로 ‘즉흥적’이란 비난까지 받고 있지만 만성 재정적자와 무역적자 해소라는 대의명분에서는 일관성이 없는 것도 아니다. 각종 연방정부 사업·기구와 해외 원조 축소, 연방공무원 대량 해고가 재정 균형을 노렸다면 관세를 앞세운 무역 상대국에 대한 파상공세는 무역 불균형 시정 과정으로 설명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부작용으로 인플레이션과 경기 침체 우려가 제기될 때면 트럼프 대통령은 희생양을 걸어 세워 증오를 선동한다. 즉, 전임 민주당 정부의 방만한 대내외 지출, 무역 상대국의 갈취 행위, 불법 이민자의 사회 질서 파괴 등을 ‘공공의 적’으로 만들어 정당성을 확보하는 식이다. 트럼프 대통령을 파시스트로 지목한 반(反)트럼프 주말 시위, 대학과 언론의 저항, 민주당의 탄핵 시도, 사법부 견제에도 불구하고 냉철히 말해 트럼프 대통령 지지층의 의미 있는 이탈은 여론조사 결과에서 나타나지 않는다.

트럼프 정부가 ‘제2의 플라자합의’를 도출해 달러 약세와 달러 패권 유지를 동시에 달성하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그러나 민주당 세력이 지리멸렬한 상황에서 내년 11월 중간선거까지 재정적자 축소, 미국 및 외국 기업의 리쇼어링(대미 투자), 주요국과의 무역 협상에 이은 수출 증대를 숫자로 보여주거나 선거 공약처럼 관세 수입에 의지한 감세 정책을 본격 실행한다면 공화당의 양원 장악은 연장될 가능성이 높다.

만일 이처럼 미국 내 정치 구도가 트럼프 대통령 임기 내내 지속된다면 그가 남길 유산은 세기의 획을 긋는 수준이 될 전망이다. 애덤 투즈, 브랑코 밀라노비치 교수 등은 각자 저서에서 2016년 트럼프 대통령을 선택한 정치 에너지는 초글로벌화 현상이 미국 사회를 양극화시켰기 때문이라고 설파했다. 오늘날 더 강해진 트럼프 극우주의는 다양성·형평성·포용성(DEI), 다이민사회 등 기존 국내적 가치는 물론 자유민주주의, 다자주의 등 국제적 가치를 거부할 정도인 ‘미국판 문화혁명’에 버금간다.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도 TV 인터뷰에서 확인했듯이 트럼프 정부는 냉전 후 형성된 미국 주도의 일극 체제나 미국의 경찰 국가 역할이 “비정상”이며 냉전 시대와 같은 다극 균형 체제로 되돌아가야한다는 입장이다. 최근 관세 정책, 대중국 정책에서 보듯이 트럼프 정부는 유럽 및 동아시아 우방국과의 용의주도한 전략적 공조 없이 개별 국가와 단독 거래식 협상을 선호하는 구시대적 제국주의 외교 방식을 고수한다.

트럼프식 신고립주의 폭주 기관차를 멈춰 세울 거의 유일한 변수는 미국 내 금융시장이다. 경제 불확실성으로 지난달 초 이후 연이은 주식시장 급등락, 미국 국채와 달러화 투매가 ‘셀 아메리카’(자본의 미국 탈출)를 가속화할 경우, 미국 중앙은행(Fed)이 인플레이션을 우려해 금리 인하를 늦출 경우 트럼프 대통령이 자평하는 “유연성”만 남아 있을 뿐이다. 그것이 아니라면 90일간 유예된 주요국과의 상호관세 협상이 7월 8일까지 순조롭게 완료되더라도 또는 3년9개월 후 트럼프 대통령 임기가 끝난다 해도 글로벌 경제 리더로서 미국의 역할 회복은 요원하다.

오히려 세계 최대 헤지펀드 브리지워터 창립자인 레이 달리오가 분석한 제국 흥망 패턴을 볼 때 2008년 금융위기, 적자·부채 누적, 사회 분열, 대외 갈등은 이미 또 하나의 제국 말기 현상을 단계적으로 보여준 것일 수 있다.

이처럼 세계 질서는 서방과 글로벌 경제의 실종으로 과도기이자 위기를 맞고 있다. 한국의 6월 대선은 이 시대 국가 생존이 걸린 첫 단추가 되는 셈이다. 우리에게는 기득권 수호도, 기존 체제 부정도 아닌 국가의 정체성과 운명에 대한 비전을 품은 지도자가 필요하다. 그 지도자는 미국이 ‘팍스 아메리카나’를 유지하기 위해 왜 한국, 일본, 대만 같은 동아시아 산업국과 기술·자본·생산 방식의 협력이 필요한지 설득하고 역내 협력을 이끌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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