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발전소는 폭발하지 않는다. 핵폭탄처럼 터지려면 고농축 우라늄을 순식간에 임계 질량 이상으로 압축해야 하는데, 원전 구조상 그게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냉각이 안 되면 노심이 녹을 수는 있다. 하지만 한국 원전에서 최악의 상황이 벌어지더라도 우리나라 격납 건물은 크고 튼튼해 그 결말은 1979년 미국 스리마일아일랜드(TMI) 2호기 사고 수준에 그칠 것이다. 당시 노심 일부가 녹았지만 방사성물질은 격납 건물에 고스란히 갇혔고 인근 주민 건강 피해는 사실상 0이었다. 수십 년에 걸친 역학조사에서도 건강 이상은 확인되지 않았다. 우리 원전은 TMI 2호기보다 훨씬 강화된 안전 설계를 갖추고 있다.
“그래도 옛 소련 체르노빌이나 일본 후쿠시마 원전 같은 사고가 일어나지 않나요?” 이런 반론이 나올 법하다. 체르노빌 원전 폭발은 출력이 폭주하는 소련식 원자로 고유의 구조적 결함에서 비롯된 사고다. 후쿠시마 역시 국내에서 비슷한 사고가 발생하더라도 결말은 TMI 2호기 수준일 것이다. 게다가 두 원전 모두 우리 원전과 구조 및 설계가 근본적으로 다르고 그 후로 안전 기술은 꾸준히 진화해왔다.
심지어 미국에선 TMI 2호기 옆에 서 있던 1호기가 지금 재가동을 준비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이 원전 전력을 20년간 직접 사겠다는 장기 전력구매계약(PPA)을 맺었기 때문이다. 원전 사고의 상징이던 그곳에서, 인공지능(AI) 시대 전력 수요가 잠자던 원전을 깨우고 있다. 세계는 지금 원전 자체가 아니라 원전을 갖지 못할까 봐 더 두려워하고 있다.
전력 수요는 그야말로 폭증하고 있다. AI 데이터센터(AIDC)는 하루 24시간 어마어마한 전기를 소비한다. 반도체 공장(팹)은 미세 공정 하나하나가 막대한 전력을 사용한다. 탄소 중립을 위해 수소환원제철로 전환하는 철강단지는 전력과 수소를 동시에 필요로 한다. 이들 수요의 공통점은 하나다. 날씨와 계절에 관계없이 365일 단 한 순간도 전기가 끊기면 안 된다는 것이다. 해가 뜰 때만 발전하고 바람이 불 때만 돌아가는 재생에너지만으로는 근본적으로 채울 수 없다. 원자력이 아니면 답이 없다는 얘기다.
미국과 유럽 빅테크 기업은 앞다퉈 원전 PPA를 맺고 있다. 구글,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가 원전을 선택하는 건 이미지 때문이 아니다. 탄소 없는 안정적인 전력을 수십 년 단위로 확보하려는 냉철한 전략이다. 체코, 폴란드 같은 나라도 소형모듈원전(SMR) 건설에 나서며 ‘원전 르네상스’에 합류하고 있다. PPA가 체결되면 원전 건설의 경제성이 확보되고 새 원전 투자가 줄줄이 이어진다. 수요와 공급이 맞물려 선순환이 시작된다.
“PPA를 허용하면 한국전력이 힘들어지지 않나요?” 이 논리는 제대로 따져봐야 한다. 지금 한전은 한국수력원자력에서 원전 전기를 ㎾h당 62원(5년 평균)에 사왔다. 액화천연가스(LNG)로 발전하는 전기는 162원이다. 저렴한 기존 원전 전기를 대기업이 직접 빼가는 구조라면 한전에 비싼 전기만 남아 일반 소비자가 손해를 본다. 그렇게 가서는 안 된다. 지금 거론되는 원전 PPA는 신규 원전을 대상으로 한다. 새로 추가된 원전이 PPA로 전력을 공급하고 여분은 비싼 LNG를 대체한다. 그 혜택은 한전과 일반 소비자 모두에게 돌아간다.
이 고리가 우리는 없다. 지금은 기업들이 원전 전력을 골라 살 방법이 제도적으로 막혀 있다. 수십조원짜리 데이터센터를 한국에 짓고 싶어도 원전 PPA를 맺을 수 없으니 전력 조달 계획을 세울 수 없다. 결국 투자자는 PPA가 되는 나라로 떠난다. 원전과 수요가 서로를 바라보면서도 악수하지 못하는 형국이다. 다른 나라는 다 하는 것을 우리만 못하고 있다.
분위기도 달라졌다. 지역 사회가 이제는 신규 원전을 먼저 유치하겠다고 나선다. 안정적 일자리와 지역 경제 활성화라는 실질적 가치를 주민이 몸으로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주민 수용성이 높아지면 원전 부지 확보도 빨라진다.
수요는 폭발하고, 기술은 준비됐고, 주민도 환영한다. 남은 건 하나다. 원전 PPA를 허용하는 제도적 결단이다. 제도 하나가 바뀌면 대한민국 에너지 판도가 달라진다. 이 고리에 불을 붙이면 원전 수요와 건설은 폭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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