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시험대 올라선 한국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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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칼럼] 시험대 올라선 한국 경제

주요 20개국(G20) 중 무역 개방도 1위인 우리 경제가 대내외적으로 시험대에 올랐다. 정치적 혼란과 누적된 구조적 문제들로 경제의 기초 체력이 바닥난 상황에서 대외 환경에도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정책으로 수출 전선에는 이미 경고등이 켜진 상태다. 미국과의 협상 결과에 따라 단기적 반전이 가능하겠지만, 지정학적 갈등과 글로벌 자유무역 질서의 퇴조 추세 등을 감안하면 수출 전선의 경고등은 쉽게 꺼지지 않을 것 같다.

대외 금융환경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불안의 진원지가 국제 금융시장에서 압도적인 지위와 우월적 힘을 가진 미국이기 때문이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는 미국 금융시스템 내부에 누적된 불균형에서 시작됐다. 반면 지금의 국제금융 불안은 경제, 금융, 안보를 망라한 미국의 전방위적인 대외 전략 변화가 초래하고 있다. 향후 상황 전개와 우리에게 미칠 영향을 예측하기가 쉽지 않은 이유다.

시험대에 오른 이상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고도의 경계심과 철저한 사전 대비다. 자본시장이 완전 개방된 가운데 수출과 성장이 급락하고 미 달러 환율이 요동치는 상황에서는 금융·외환위기 가능성의 우려를 불식하는 것이 우선이다. 우선 외화유동성 충격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

다행히 큰 틀에서 본 우리의 대외자산과 부채 현황은 일단 합격점이다. 2024년 말 기준 순대외금융자산은 1조1000억달러에 이른다. 통화 구성도 대외자산은 달러화 비중이 60% 내외인 반면 대외부채는 원화 비중이 66% 내외로 높아 양호한 편이다. 외환 리스크와 연관성이 높은 대외채권과 채무에 초점을 맞춰도 우리는 3900억달러의 순채권국이다. 만기 구조 역시 건전하다. 대외채권은 단기 비중이 60% 수준인데 대외채무는 장기 비중이 78% 수준이다. 외환시장 충격에 이탈 가능성이 높은 외국인 자금(단기채무) 규모는 크지 않고 필요시 우리가 동원할 수 있는 외화유동성(단기채권)은 여유가 있다는 의미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가장 성공한 정책이 외화유동성 리스크 관리였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다음은 성장률 추락, 수출 감소, 금융부실 증가 등 실물경제 악화가 외환 리스크로 전이되는 것을 차단하는 것이다. 거시정책(통화·환율·재정)과 금융정책의 영역이다. 인플레가 안정되고 경상수지도 아직 흑자가 유지돼 거시정책의 정책 여력(policy space) 자체는 여유가 있다. 반면 금융정책은 시간과의 싸움에 쫓기는 형국이다. 건설업과 자영업을 중심으로 늘어나는 금융부실 정리에 필요한 골든타임이 얼마 남지 않았거나 이미 지났을 수 있다. 더 늦기 전에 감독당국이 금융회사의 건전성을 재점검하고 부실기업 정리를 서둘러야 한다.

마지막 과제는 구조조정이다. 우리 경제 전반에 걸쳐 누적된 구조적 불균형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다. 노동시장 이중구조, 과잉규제, 진입장벽, 인구구조 악화, 재정 중독 등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들다. 최근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잠재성장률 전망(2030년 1%대 초반, 2040년 0%대)은 구조적 불균형에 대한 경고나 다름없다. 구조적 불균형은 성장동력도 해치지만 거시·금융정책의 효과를 제약하는 요인이기도 하다. 경제 위기는 대내외 충격만으로는 발생하지 않는다. 충격을 흡수하고 필요한 조정을 유도할 수 있는 정책 여력이 부족하거나 각종 장애물로 인해 정책 효과가 제대로 발휘되지 못할 때가 가장 위험하다.

장애물 제거를 위한 구조조정이 시급하지만 불행히도 시간은 우리 편이 아니다. 늦었지만 시작이라도 해야 한다. 신뢰할 수 있는 구조조정 계획을 세워 국민의 동의를 구하고 국제금융시장과 적극적으로 소통해야 한다. 1997년 외환위기 극복의 시발점도 국제통화기금(IMF)에서 빌린 외화자금이 아니라 우리 국민이 고통을 감내한 구조조정 프로그램이었다. 이제 대통령 선거가 코앞이다. 요란한 선거 구호가 난무하지만 구조조정이나 신뢰와는 거리가 먼 온통 달콤한 유혹뿐이다. 계속되는 희망 고문에 국민은 지쳐가고 있고 책임지지 않는 정치권력 때문에 우리 경제는 벌거벗은 채 시험대에 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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