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는 보호주의 확대와 공급망 재편, ‘두 개의 전쟁’ 장기화 등 문명사적 대전환 시기에 출범했다. 대한민국은 지난 6개월간 12·3 비상계엄과 대통령 탄핵 등으로 군 통수권이 마비되는 초유의 사태를 겪었다. 이 기간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는 동맹과 적대국을 가리지 않고 관세 폭탄을 퍼부었다. 워싱턴발 주한미군 감축설은 미국 당국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가까운 시일 내에 ‘전략적 유연성’의 구체적 실행 조치로 가시화할 가능성이 커졌다.
한반도 주변 정세도 심상치 않다. 중국은 최근 서해 잠정조치수역(PMZ)을 일방적으로 항행금지구역으로 선포한 뒤 항공모함 푸젠함을 투입해 무력 시위를 벌였다. PMZ 부근에는 해상 구조물은 물론 동경 123~124도에 다량의 부표를 설치하는 등 서해를 내해(內海)로 만들려는 ‘서해공정’을 노골화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 임기 첫날인 지난 4일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서기가 평양을 방문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만났다. 북한 특수작전군의 결정적 기여로 러시아군이 쿠르스크 탈환에 성공하면서 북·러 관계는 ‘피로 검증된 혈맹(血盟)’ 수준으로 발전하고 있다.
군 내부 분위기도 위태롭다. 비상계엄 사태로 육군참모총장, 특전사령관, 수방사령관 등 핵심 지휘관이 기소돼 군 수뇌부는 직무대행 체제로 운영 중이다. 30명 이상의 군 고위 간부가 재판과 수사를 받는 데다 ‘윤석열 내란·외환 행위 진상 규명 특검(내란 특검)법’이 본격화하면 수사 대상은 더 확대될 수 있다. 국가의 안전 보장과 국토 방위의 신성한 의무에 동원돼야 할 군대가 내란 종식의 핵심 대상으로 내몰리면서 안보 공백마저 우려된다.
이재명 대통령은 내란 수습의 정치적 책임을 짊어진 선출 권력이다. 동시에 국군 통수권자로서 군심(軍心)을 결집하고 확고한 대비 태세를 확립해야 하는 막중한 책임도 안고 있다. 이 대통령은 후보 시절 문민 통제 확립, 한·미 동맹 기반의 확장 억제 고도화, 군 첨단화 및 방위산업 경쟁력 강화 등을 공약으로 제시한 바 있다.
이재명 정부는 전문성, 자질, 문민 통제 철학을 겸비한 국방부 장관 후보자를 지명해 새로운 리더십을 중심으로 무너진 군의 기강과 질서를 바로세우고, 국민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분골쇄신 자세로 국방 대전환에 착수해야 한다. 또 ‘비상계엄 빌드업’ 수단으로 변질된 군 장성 인사 시스템을 전면 재정비해 군의 정치화를 원천 차단해야 한다.
국민 눈높이를 비롯한 시대적 요구에 부응해 국군방첩사령부(방첩사), 정보사령부(정보사) 등 국직부대 개편을 추진하되 내란에 가담한 지휘관에 대한 사법적 평가는 방첩사의 존폐 여부와 분리해 접근할 필요가 있다. 트럼프 2기 자국 우선주의와 미국 국방 정책의 핵심인 ‘거부 전략’ 여파로 주한미군 감축과 한국의 방위비 분담금 인상이 현실화하고 있다. 비용 부담을 통해 동맹에 대한 한국의 기여와 진정성을 각인시키고, 대북 억제력을 관철하는 합리적 거래를 모색해야 한다. 한국 국격에 걸맞게 ‘나쁜 평화’를 넘어 ‘비싼 평화’를 전략적으로 선택해 전쟁을 예방하는 고통 분담과 발상 전환도 필요하다.
최근 우크라이나 정보당국은 대당 가격이 2000달러(약 271만원)로 추산되는 자율주행 드론을 활용한 ‘거미줄 작전’으로 러시아군에 70억달러(약 9조5000억원)에 이르는 치명적인 피해를 입혔다고 주장했다. 인공지능(AI) 드론이 전쟁 판도를 뒤흔드는 게임 체인저로 떠오른 반면 우리 군은 드론작전사령부를 창설하고도 필수 전투용 드론의 전력화는 물론 연구개발(R&D)조차 초보적 단계에 머물러 있는 실정이다. ‘AI 대전환(AX)’을 통한 국방 생산성 극대화는 생존을 위한 필수 전략이다.
방위산업을 국가 대표 산업으로 육성하기 위해서는 제도적 유연성도 필요하다. 방산물자 수출 시 국회 동의를 받아야 하는 시대착오적 제도와 관행은 개선돼야 하며, 전투 체계 소프트웨어의 기술 자립을 위한 국가 차원의 R&D 지원도 강구돼야 한다. 실용적 시장주의를 표방한 국민주권 정부의 국방정책이 국방개혁 2.0과 국방혁신 4.0의 강점을 진화적으로 계승하고, 내란 종식을 넘어 빛나는 새 나라를 세우는 데 기여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