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사회 통합은 안보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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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칼럼] 사회 통합은 안보에서 시작된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한 뒤 우리 사회는 이념적으로 깊이 분열됐다. 근년에 우리 사회는 구성 원리인 자유민주주의 이념과 시장경제 체제를 지지하는 세력, 즉 보수 세력이 유난히 작았다. 자연스럽게 사회적 응집력도 약해져서 사회가 늘 흔들렸다.

이번 사태는 윤 전 대통령의 탄핵으로 끝났지만, 사회적 분열이 아물 가능성은 크지 않다. 그래서 모두 대화와 타협을 통해 사회 통합을 이뤄야 한다고 말한다. 맞는 얘기지만, 그것이 현실적 방안으로 구체화되려면 그런 얘기가 품은 근본적 가정들이 먼저 검토돼야 할 것이다.

그런 가정들 가운데 가장 중대한 것은 우리 사회가 ‘닫힌 체계’(closed system)라는 생각이다. 현대에선 가장 폐쇄적인 국가도 닫힌 체계가 아니라 외부의 영향이 늘 작용하는 ‘열린 체계’(open system)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를 정책 수단으로 삼았다가 낭패를 보는 모습에서 이 점이 잘 드러났다.

우리 사회는 강대한 전체주의 국가로 둘러싸여 있어 늘 외부로부터 부정적 영향을 크게 받아왔다. 균질적이던 우리 사회가 처음 분열된 것은 1945년의 모스크바 외상 회의가 한반도를 신탁 통치 아래 두기로 결정한 때다. 당시 남한에선 모두 그 결정에 분연히 반대했다. 그러나 소비에트 러시아 군정 당국의 지시를 받으러 월북한 박헌영이 돌아와서 신탁통치 지지를 선언하자 사회가 둘로 갈라졌다. 북한의 영향력은 1948년 제헌국회의원 선거에서 절정에 이르러, 선거 과정에서 좌익의 선거 방해로 452명이 죽고 766명이 부상했다. 북제주군 2개 선거구에선 선거가 치러지지도 못했다.

6·25전쟁을 겪고 공산주의의 실상을 체험하면서 우리 사회에서 좌익은 힘을 잃었다. 그러나 남북한이 대화하고 통일을 이루는 방안이 논의되기 시작하자, 선동선정에 능한 북한의 영향력이 빠르게 커졌다. 북한 정권 최고위층의 실상을 처음으로 우리에게 알려준 황장엽 노동당 비서는 단언했다. “남한에서 일어나는 이상한 일들을 추적하면 모두 평양으로 향한다.”

북한의 영향력은 여전한데, 근년에는 중국의 막강한 영향력이 더해졌다. 이번 대통령 탄핵 과정에서 드러났듯이 중국의 영향에서 자유로운 분야는 없다. 오죽했으면 중국 정부가 재한 중국인에게 정치 집회에 참여하지 말라고 공개적으로 지시했겠는가. 중국이 우리 사회의 여론에 미치는 영향은 전문가들도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 넓고 깊다.

이런 사정은 미국 정보기관들의 평가에서 유추할 수 있다. 원래 미국에 깊이 침투한 것은 러시아였다. 특히 러시아군 정보 기구인 GRU는 미국에 깊이 뿌리를 내렸다. 잘 알려진 것처럼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선 GRU의 주도 아래 러시아 정보 기구가 대대적으로 침투해 힐러리 클린턴 후보의 낙선과 도널드 트럼프 후보의 당선을 위해 암약했다. ‘러시아 게이트’라고 불린 이 거대한 공작에서 러시아의 해킹과 역정보(disinformation)가 선거 결과를 바꿨다고 많은 전문가가 믿는다.

위협적인 러시아의 해킹과 역정보 능력도 중국의 능력에 비하면 왜소하다. 미국 전문가들은 침투 능력에서 중국이 러시아보다 2단계 높다고, 즉 몇백 배 크다고 판단한다. 얼마 전 미국 연방수사국(FBI)의 수장은 해킹을 통한 침투 능력에서 중국은 미국보다 50배가량 앞서며, 미국의 능력으로는 미 정보통신 체계에 침투한 중국의 악성 프로그램을 모두 제거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처럼 강력한 침투력을 지닌 중국이 한국에선 아무런 제약도 받지 않고 활동한다. 특히 중국 자본의 점증하는 한국 진출로 정보 생산과 유통 분야에서 중국에 호의적인 세력이 빠르게 늘어난다. 이런 상황에서 그저 자유주의자와 전체주의자가 대화와 타협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위기를 키울 수밖에 없다. 우리의 위태로운 안보를 우리 시민 다수가 인식한 뒤에야 외부의 부정적 영향력을 줄일 대책을 세울 수 있다. 그렇게 안보 바탕이 확고해져야 비로소 국론의 깊은 분열도 줄어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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