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미국發 통상 위기, 무역 다변화 기회 삼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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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칼럼] 미국發 통상 위기, 무역 다변화 기회 삼아야

이재명 정부는 30년간 이어져온 세계무역기구(WTO) 체제가 최대 위기를 맞은 시기에 출범했다. 한국은 통상 국가인 만큼 이를 국가적 위기로 인식하고 생존 방안을 모색하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번 위기는 미국 내에서 WTO가 자국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인식이 확산하면서 심화됐다. 민주당과 공화당 모두 국제무역 규범에 얽매이지 않으려는 초당적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재집권 후 등장한 보편관세, 상호관세, 국가 안보 품목관세 등 3중 관세 정책은 WTO 관세 상한과 최혜국대우(MFN) 원칙을 위반했다. 그러나 미국은 상소기구 판사 임명을 거부하고 분담금을 미납해 사실상 WTO를 탈퇴한 상태라 이런 위반은 법적 논란의 의미를 잃었다.

한국이 당면한 통상 현안이 오는 8일까지 유예된 상호관세 협상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지금이 대미 협상에만 ‘올인’할 때인지는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최근 미국의 무역 상대국은 미국 시장에 직접 진출하기보다 대안 시장을 찾는 데 더 분주하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미국의 관세 압박이 집중된 지난 4월 동남아시아 3개국을 순방했으며 5월에는 브라질, 콜롬비아, 칠레 등 중남미 정상을 베이징에 초청해 무역 인프라 강화에 전념했다.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은 지역 및 개별국 차원에서 중국, 인도와 맺은 기존 자유무역협정(FTA)을 확대·개정하고 유럽연합(EU), 캐나다 등과 FTA 체결을 서두르고 있다. EU는 남미공동시장(메르코수르)과 25년간 이어온 FTA를 트럼프 대통령 당선 직후인 지난해 12월 타결했다.

급기야 지난달 26일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이 EU와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간 파트너십을 제안하며 이를 “WTO 재설계의 시작”이라고 언급한 점에 주목해야 한다. 그는 미국이 빠진 ‘WTO-1’ 또는 ‘미국 제외 무역기구(MUTO)’라는 새로운 다자무역체제 구성 논의에 불을 붙인 것이다. 이 시나리오는 이제 현실화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한국은 모든 역량을 불확실성이 큰 대미 협상에만 쏟기보다 새 통상 질서 수립에 참여할 준비를 해야 한다. 한국은 30년 전과 달리 다자체제 복원의 주도자로서 새 질서와 규범을 설정할 수 있는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새 통상 질서 확립이 장기적 목표라면 단기적으로는 양자 협정, 중기적으로는 지역 협정 완성에 주력해야 한다.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에 따른 무역 피해가 큰 주요국 중 한국이 아직 양자 FTA를 체결하지 못한 국가는 일본과 멕시코다. 지금은 동병상련 처지가 된 이 두 나라와 지난 20년간 꺼져 있던 FTA 논의를 다시 살려야 한다. 또 이들은 한국의 중기 목표인 CPTPP 가입에 도움이 될 중요한 파트너다.

일본과는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내에서 간접적인 FTA 효과를 얻고 있다고 볼 수도 있지만 양자 FTA의 잠재력에 비하면 미흡한 수준이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신정부 출범에 맞춰 펴낸 ‘새로운 질서, 새로운 성장’ 보고서에서 ‘일본과의 경제 연대’를 제안했다. 산업 구조가 비슷한 양국 간 협력이 경제 안보 시너지를 극대화할 것이라는 논리다. 국제항공운송협회(IATA) 통계에 따르면 한·일 및 서울~도쿄 간 교통량은 국가 간 순위에서 세계 4위, 도시 간 순위에서는 세계 3위에 오를 정도로 양국 교류는 정점에 이르렀다. 경제 협력 틀의 고도화는 이미 시대적 요청이다.

멕시코에서도 트럼프 행정부가 펜타닐, 불법 이민 유입 등을 관세 정책과 연계하려 하고, 미국·캐나다·멕시코 FTA(USMCA) 만료 시기를 결정지을 ‘6년 시행 평가’를 앞두자 무역 다변화 요구가 커지고 있다. 그간 한국과의 FTA에 소극적이던 멕시코 경제부와 업계에서도 필요성이 논의되기 시작했다. 이는 기존에 상·하원 의원과 외교부에 국한됐던 지지 입장이 강화되고 있음을 뜻한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멕시코의 한류 팬도 이런 기류 변화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한국 관련 당국은 이번 골든타임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지금은 대미 무역 협상의 이면 전략으로 위기를 기회로 전환시킬 다층적 전략을 수립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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