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집권 2기 핵심 경제·사회 정책을 한데 모아 지난달 법제화한 ‘하나의 크고 아름다운 법안(OBBBA)’은 세부 내용을 살펴볼수록 그의 제조업 육성 의지가 얼마나 강한지 새삼 느끼게 된다. 한편에서 각국에 관세를 때리며 ‘미국 밖 기업들’의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있는 트럼프는 다른 한편에선 OBBBA를 통해 ‘미국 내 기업들’에 법인세를 대폭 감면하기로 했다. 타국의 제조업체까지 미국 땅에 공장을 짓게 유도하는 ‘채찍과 당근’ 전략이다. OBBBA는 적자가 나 납부할 법인세가 없는 기업도 투자액의 일정 부분을 무조건 환급해 주는 ‘반도체 시설투자 세액공제율’을 기존 25%에서 35%로 높였다. 첨단제조세액공제(AMPC)도 상당 기간 유지해 배터리 부품, 희소 금속 등의 미국 내 공급망 재구축을 지원한다.
미국 내 사업용 자산 및 연구개발비에 대한 ‘즉시 상각(full expensing)’을 영구 허용한 것은 더 인상적이다. 투자 연도에 곧바로 전액을 세무상 비용(손금)으로 떨어내도록 허용한 것으로, 한국을 포함한 대부분 나라가 통상 4~5년, 길게는 10년에 걸쳐 조금씩 비용처리(감가상각)하게 하는 것과 대비된다. 투자 초기 과세표준과 납부세액을 대폭 줄이고 잉여현금을 늘리게 해 투자수익률(IRR)을 높이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벌써부터 외신에선 알파벳(175억달러), 아마존(157억달러) 등 S&P500 기업 369곳이 올해만 총 1480억달러의 법인세를 절감할 것이란 보도가 나온다. 반도체는 물론이고 조선, 자동차, 발전, 인프라 등 자본투자가 많은 한국 기업들도 앞으로 미국에 신규 투자 때 대규모 세제 혜택을 받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기업이 국내 생산을 이어가며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게 지원하는 방법은 자명하다. 같이 세금을 깎아주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는 최근 발표한 내년도 세법 개정안에서 법인세율을 구간별로 1%포인트 인상하기로 했다. ‘한국판 OBBBA’이자 이재명 대통령 대선 공약이기도 한 국내 생산·판매 세액공제도 도입하지 않기로 했다.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청문회에서 세율 인하에도 법인세 세수가 2년 새 40% 줄고 투자 확대 효과가 없었다고 군불을 때자 대통령실과 여당이 가세해 ‘윤석열 정부의 부자 감세 이전으로 돌아가는 조세 정상화’ 및 ‘세수 확충’을 세율 인상 명분으로 내세웠다.
하지만 법인세 인상이 조세 정상화인지부터 의문이 든다. 1980년대 후반부터 감세 전쟁이 본격화하면서 글로벌 법인세는 꾸준히 떨어졌고, 한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노태우 정부 때 34%였던 법인세 최고세율은 김영삼 정부 때 28%, 김대중 정부 때 27%, 노무현 정부 때 25%, 이명박 정부 때 22%로 계속 낮아졌다. 조세 경쟁에서 뒤지면 국가 간 투자 유치전에서 실패하고 국내 투자와 고용에도 악영향을 줄 것이란 우려에서였다. 문재인 정부만 복지 재원 확충 명분으로 법인세율을 25%로 올렸는데, 문민정부 이후 오히려 이게 ‘예외’였다.
법인세수 확충도 단기적으론 몰라도 중장기적으로 지속될지 의문이다. 내년에 다시 25%가 되면 한국 법인세율은 베트남(20%), 홍콩(16.5%), 싱가포르(17%) 등 경쟁국을 훌쩍 넘어 연방법인세(21%)에 주법인세를 합한 미국 법인세율 평균 수준으로 높아진다. 법인세 증세는 기업 입장에선 곧 그만큼의 현금 유출 확대다. 법인세율을 1%포인트 인상하면 기업이 투자 의사결정 때 예상하는 수익률을 약 10% 떨어뜨려 국내에서의 투자를 위축시킬 것이라는 회계업계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15% 관세로 기업 실적 악화가 불가피한 상황에서 한국은 미국에 3500억달러 투자까지 해야 한다. 노란봉투법 등 반기업 법안까지 가세하면 국내 투자 공동화가 가속화할 가능성이 높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3년 7월 한 행사에 참석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전 세계에서 기업하는 사람이 활동 무대를 어디로 정할 것인지를 결정할 때 법인세율을 갖고 고려한다면, 정부는 승복할 수밖에 없다.” 관세 전쟁 한복판인 지금 더 절실하게 들리는 말이다. 법인세는 안 올리는 게 바람직하지만 올리더라도 관세 전쟁의 먹구름이라도 걷힐 때 고려하는 게 맞다. 세법 개정안 논의 때 국회와 정부가 진지하게 검토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