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잎 삶아 버티는 노학자 곁 청빈한 삶은 싫어, 기어코 선비들 따라 과거 길에 나서리라.
주머니 비어 봄놀이 다닐 말은 못 장만해도, 사윗감 찾는 수레들에 눈 어지러울 날 오리니.
급제하는 날엔 세인 앞에 어깨를 펴리. 황지 조서에 먹이 덜 마른 검은 글씨로 그대 이름 박히리라.(粗繒大布裹生涯, 腹有詩書氣自華. 厭伴老儒烹瓠葉, 强隨擧子踏槐花.
囊空不辦尋春馬, 眼亂行看擇婿車. 得意猶堪夸世俗, 詔黃新濕字如鴉.)
―‘동전과의 작별에 부쳐(화동전유별·和董傳留別)’ 소식(蘇軾·1037∼1101)겉 차림은 궁색해도 말과 눈빛이 흐트러지지 않은 사람, 시인은 친구 동전(董傳)에게서 그런 빛나는 기품을 본다. 시인은 가난을 동정하는 대신 시선을 한 번 비틀어 친구의 미래를 축원한다. 청빈한 일상에만 머물지 말고 과거의 길로 나서 보라고 등을 민다. 급제한 날, 가난하여 봄 거리에서 말 타고 활보하는 호사는 누리지 못할 수도 있다. 그래도 거리엔 사윗감을 찾으려 권문세가의 수레가 몰리고, 그 한복판에서 네 이름이 불릴 수도 있다는 식이다. 농담 뒤에 온기가 담긴 시인의 격려를 마냥 우스개로만 치부할 수는 없을 듯하다.그런데 이 과장된 ‘합격의 장면’은 장식에 가깝고, 시의 첫머리가 붙들고 있는 핵심은 따로 있다. 시인이 믿은 건 시험장 밖에서 이미 완성된 한 가지, 학문이 빚어낸 친구의 기질과 품격이다. 그래서 이 시는 ‘언젠가 네가 잘될 것’보다 ‘지금의 너를 믿어라’라는 응원에 가깝다.
이준식 성균관대 명예교수
© dongA.com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좋아요 0개
- 슬퍼요 0개
- 화나요 0개

2 weeks ago
5
![“인생의 황혼 앞에서 멈춰 서다”... 허광호 산문집 '오후 5시 쉼표 하나'[신간]](https://img.etnews.com/news/article/2026/03/28/news-p.v1.20260328.63b48b620ab243d595184361c36b9726_P1.png)
![[토요칼럼] 월간남친과 청년 정책](https://img.hankyung.com/photo/202603/01.43758977.1.jpg)
![[ET톡] 붉은사막에 거는 기대](https://img.etnews.com/news/article/2025/08/08/news-p.v1.20250808.33a99276170a4e199b19b35b1073ca22_P1.jpg)
![[팔면봉] ‘통일교 의혹’ 수사받는 사람을 부산시장 경선시키는 與. 외](https://it.peoplentools.com/site/assets/img/broken.gif)
![[사설] ‘서해수호의 날’ 참석 대통령, 음모론과도 영구 결별을](https://www.chosun.com/resizer/v2/HEZWENRTG5SWKOBYGIYDGZRQGI.jpg?auth=3bbc473a47b3702307284e0e328be98816eec805c3e9a41a5b3a63c0ce975a5f&smart=true&width=3918&height=2736)
![[사설] 국힘 지지율 19%, 선거 코앞 당 전체가 뭘 하는지](https://www.chosun.com/resizer/v2/GBRGENZUHAZDCZRTMJSGCMLCGE.jpg?auth=c7589338229db1a3337f1a22c85e3c35df07601b670893bcdd2d1575bab727aa&smart=true&width=719&height=478)
![[강천석 칼럼] 미국, 친구로서 얼굴과 敵으로서 얼굴](https://www.chosun.com/resizer/v2/UP25ZI3WNVEQ7KWMW4S2ICHWZY.png?auth=49c888a405cbb99306e5d7401b46e19eb7bbf58606a8e94c45a908687a485da1&smart=true&width=1200&height=855)






English (U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