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인터넷동영상서비스(OTT) 넷플릭스가 스포츠 중계권을 중심으로 점유율 확장에 돌입했다. 최근 카레이싱 경기 '포뮬러 원(F1)'의 미국 독점 중계권에 눈독을 들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다. 이미 1300억원을 지불하고 미국 내 경기의 방송권도 확보했다.
미국 내에서 F1은 현재 케이블TV 채널 ESPN이 독점 중계 중이지만, 올해 이후로 계약이 종료될 예정이다. 중계권의 예상 낙찰액은 연 7500만달러에서 9000만달러 수준으로 추정되고 있다. 업계에선 막대한 자본력과 영향력을 가진 넷플릭스의 독점 계약이 확실시된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F1 중계권 이전에도 넷플릭스는 '스포츠 중계권 사냥'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종목을 가리지 않고 미국 내 유명 스포츠 독점 중계권을 속속 따내고 있다. 지난해엔 월드레슬링엔터테인먼트(WWE)와 손잡고 중계권 단독 계약을 성사시켰다. 계약금만 무려 50억달러(7조2580억원)에 달하는 대형 계약으로, 10년간 WWE의 단독 중계를 맡게 됐다. WWE 출범 31년 만에 '탈 브라운관'을 성공시킨 것이다. 여기에 미국 최대 스포츠 중 하나인 내셔널풋볼리그(NFL)의 크리스마스 이벤트 중계를 가져오는 데에도 성공했다. 크리스마스 당일 비욘세의 하프타임 쇼를 비롯해 전 경기를 오직 넷플릭스에서만 중계한다.
미국 내에서 스포츠 중계는 전통적으로 케이블TV가 맡아왔다. 아마존 프라임, 디즈니플러스가 스포츠 중계에 뛰어든 것을 시작으로 '업계 최강자' 넷플릭스까지 뛰어들며 케이블TV 스포츠 채널의 점유율을 뺏어오고 있는 상황이다.
넷플릭스가 영화, 드라마를 넘어 스포츠 중계권으로 외연을 넓히는 데엔 '원스톱 스트리밍 목적지'가 되겠다는 의도가 담겼다는 해석이 나온다. OTT가 콘텐츠의 단순 유통창구가 아니라 기존 케이블TV의 영역이었던 스포츠 실시간 중계를 대체할 수 있다는 인식의 변화도 넷플릭스를 움직이게 만들고 있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무선 기반으로 영상을 제공하는 OTT의 특성상 시·공간적 환경의 제약 없이 언제든 경기를 실시간으로 관람할 수 있다는 장점도 이용자를 끌어들이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국내 OTT 업체들에도 스포츠 중계권은 '효자 아이템'으로 자리잡았다. 중계를 통해 기존 고객을 붙잡을 수 있는 데다 신규 고객까지 끌어올 수 있기 때문이다. 스포츠를 관람하러 온 고객들이 경기 전후 플랫폼에서 제공하는 드라마와 예능 등 다른 영상을 함께 관람하는 경우도 많다.
특히 OTT들이 광고를 송출하는 대신 구독료를 저렴하게 책정해주는 '광고요금제'를 도입하며 스포츠 중계권은 더욱 놓쳐서는 안 될 영역이 됐다. 드라마, 영화에 비해 스포츠 경기 시청자들은 '중간 광고'에 대한 거부감이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이다. 이닝 교대, 휴식 시간 등 중간 시간마다 자연스럽게 광고를 내보낼 수 있어 광고 효과도 크다.
드라마, 영화 등에 비해 스포츠 중계가 제작비 부담이 적다는 것도 장점으로 통한다. 실제 넷플릭스는 지난해 8월 천정부지로 치솟는 제작비 때문에 '업계 생태교란종'이라는 비판을 받자 제작사와 배우 등에 '출연료 제한'이라는 초강수를 뒀다. 이처럼 출연료, 제작비 등 막대한 비용이 들지만 흥행을 장담하기 어려운 오리지널 콘텐츠 대신 새로운 수익모델로 스포츠를 택한 것이다. 콘텐츠가 시즌 내내 안정적으로 수급되는데다 고정 시청자층의 이탈 우려도 적기 때문이다.
넷플릭스는 F1, WWE, NFL 등 해외 스포츠 중계의 국내 도입에 대해서는 조심스러운 접근법을 취하고 있다. 다만, 한국프로야구(KBO), K리그 등 국내 스포츠 중계권 시장에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특히 지난해 경쟁사 티빙이 KBO의 온라인 독점 중계권을 따 오며 꾸준히 활성 고객을 늘린 사례를 경험하면서 관심은 더욱 높아졌다. 실제 티빙은 지난해 야구 중계 후 1월에 656만명이었던 월간활성이용자수(MAU)가 10월 809만명까지 늘어나는 성과를 맛봤다.
'점유율 1위' 넷플릭스가 스포츠 중계에 적극적이라는 점은 경쟁 OTT업체들에게도 긴장 요소로 통한다. 현재 국내 OTT업계 이용자 점유율의 57%를 넷플릭스가 차지하는데다 올 1월 월간활성이용자수(MAU)가 사상 최대인 1371만명을 돌파하는 등 '본업'에서도 이미 국내 최강 입지를 유지하고 있어서다. OTT업계 관계자는 "업계 1위 넷플릭스가 미국 본사에서부터 스포츠 중계에 눈독을 들인다는 건 경쟁업체들에겐 큰 위험요소"라며 "국내 입지를 넓히기 위해 언제라도 중계권 입찰에 뛰어들 '실탄'도 보유한 업체이기 때문에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고 했다.
최지희 기자 mymasak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