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하순에 친한 친구의 딸 결혼식에 참석했다. 온통 비 예보여서 걱정했는데, 결혼 당일은 기적처럼 상쾌하고 청명했다. 요즘 결혼식은 예전과 달리 격식 없이 자유로운 형식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이 결혼식도 매우 인상적이었다. 신랑 신부가 동시에 입장해 하객들에게 행복한 얼굴로 손인사를 하며 버진로드를 활보(?)했다.
사회자가 “그다음 순서로 우선 신부 측 부모님이 입장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버진로드 위에 친구 부부가 나타났다. “이 두 분은 1986년 2월 2일 결혼하셨습니다. 그날의 결혼식을 추억하며 사랑으로 낳은 따님의 결혼식을 축하하며 행진하겠습니다.” 한복 대신에 친구는 분홍색 원피스를 입고 남편의 팔짱을 끼고 천천히 버진로드를 행진했다.
“다음은 1992년 5월 15일 결혼한 신랑 측 부모님이 행진하겠습니다.” 사회자의 소개에 긴 머리에 하늘색 원피스를 입은 신랑 어머니가 남편의 손을 잡고 좀 더 발랄하게 행진했다. 유난히 버진로드가 긴 예식장이었다. 그러다 신랑 어머니가 행진 중에 갑자기 멋지게 세 차례 빙그르르 돌았는데, 부부의 스텝과 춤사위가 예사롭지 않아 분명 댄스에 일가견이 있어 보였다. 무대가 된 버진로드에 하객들이 환호하며 박수를 보내고, 신랑 신부는 웃으며 양가 부모를 맞이했다.
주례 없이 신랑 신부가 성혼선언문을 낭독하고 신부 아버지가 대표로 축사를 했다. 식이 끝나고 식사 자리에 나타난 친구는 목발을 짚고 하객에게 인사를 했다. 아니! 어쩌다가? 친구는 열흘 전쯤, 비 오는 날에 급히 걷다가 빗길에 미끄러져서 발에 골절상을 입었다고 한다. 예식에서 양가 어머니가 한복을 입고 화촉 점화하는 게 걱정이었는데, 양가에서 고민 끝에 그런 이벤트를 하게 된 거라고.
결혼식 내내 나는 늙어버린 신랑 신부의 결혼식 당시를 재현한 버진로드 행진을 보고 가슴이 뭉클했다. 친구의 결혼식 날인 1986년 2월 2일을 잊지 못한다. 친구의 본가가 있는 전라도 광주에서 예식이 있어 나는 함이 들어오는 하루 전날 친구 집에 도착해 다음날 오후 예식에 참석했다. 결혼식이 끝난 후 서울행 고속버스를 탔다. 그런데 나는 그날 서울에 도착하지 못했다. 광주를 좀 벗어나자 고속도로에 눈발이 흩날리기 시작했다. 눈은 밤새도록 내렸고, 폭설 세상의 버스에 갇힌 채 추위와 불안과 공포로 온밤을 지새웠다. 다음날 출근은 포기했고 그저 무사히 귀가하기만 기도했다. 유례없는 폭설이었다. 아침이 되자 피곤한 기사는 서울까지 가는 게 무리라고 했다. 나와 친구의 서울 하객들 몇은 어느 소도시에 여관방을 하나 잡아서 눈이 그칠 때까지 기다렸다가 저녁에 귀가했다. 결혼식 참석에 3일이 더 걸린 것이다.
예전부터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에서는 봄가을 예식을 선호했다. 죽을 날은 택일할 순 없으니 노인들은 폭염이나 엄동설한이 아닌 온화한 봄가을에 죽기를 소망했다. 예전에는 이런 의식들이 실외 행사였다. 하지만 실내에서 행해지는 요즘에도 사실 인간은 날씨와 기후의 영향에서 심신이 자유롭지 못하다.
올여름 날씨가 이상하다. 기상청의 장마 종료가 무색하게 폭염과 폭우가 번갈아 극성을 부린다. 일기예보가 아니라 일기 생중계 방송이 될 판이다.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 곳곳이 들쑤신 듯 기후위기로 자연의 재난을 겪고 있다. 최첨단 인공지능(AI) 시대에도 병든 지구의 몸부림은 예고 없이 우리의 생명을 위협한다. 인간 닮은 AI가 인간의 생명을 대신할 순 없다. 자연재해의 대재앙 시대가 도래하면 자연의 일부인 인간의 결혼식은 어떻게 변화할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