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개 없는 추락[이은화의 미술시간]〈365〉

1 month ago 5

검은 실루엣의 남자가 허공에서 흐느적거리고 있다. 가슴에는 붉은 점을 품고서. 남자 옆에는 불꽃처럼 보이는 노란 물체들이 나부낀다. 이 남자는 누굴까? 그는 하늘을 나는 걸까, 아니면 떨어지고 있는 걸까?

앙리 마티스는 건강이 나빠져 더 이상 그림을 그릴 수 없게 되자 ‘컷아웃’ 기법을 개발했다. 구아슈 물감을 칠한 색종이를 가위로 오린 뒤 원하는 구성으로 배열하는 방식이었다. 1947년 마티스는 이 컷아웃 이미지들을 이용해 삽화집 ‘재즈’를 출간했다. 삽화집에는 총 스무 개의 이미지가 사용됐는데 그중 ‘이카로스’(사진)가 가장 유명하다. 이카로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인물로 뛰어난 장인이자 발명가였던 다이달로스의 아들이다. 미노스왕이 크레타섬의 미궁에 다이달로스 부자를 감금하자 다이달로스는 탈출하기 위해 새들의 깃털과 밀랍을 이용해 날개를 만들었다. 탈출하는 날, 아버지는 아들에게 신신당부했다. 너무 높이 날면 태양에 밀랍이 녹으니 조심하라고. 이카로스는 명심하겠다고 했지만, 날면서 자유에 도취한 나머지 점점 더 높이 날아올랐다. 태양에 가까워지자 그만 날개가 녹아내리면서 추락해 죽고 만다.

마티스는 이카로스가 허공에서 추락하는 장면을 강렬하면서도 간결하게 표현했다. 가슴에 품은 붉은 점은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고 싶은 이카로스의 열정이자 과한 욕망을 암시한다. 검은 실루엣으로만 표현된 이카로스가 언뜻 추락하는 것인지, 날아오르는 것인지 애매해 보이지만 화가는 그의 날개가 다 녹아버린 뒤의 시점을 묘사했다. 노란색 불꽃들은 산산이 부서지는 꿈의 파편일 것이다.

이카로스 신화는 무모한 도전과 교만의 대가가 얼마나 큰지를 알려준다. 비록 망가졌더라도, 일부 녹았더라도 날개만 있다면 어떻게든 다시 날아오를 수 있을 테다. 그러나 마티스는 날개를 전혀 그리지 않았다. 그는 단호하게 말하는 것 같다. 추락하는 것에는 날개가 없다고.

이은화 미술평론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Read Entire Arti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