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여정은 선택과 포기의 연속… 회한과 미련에 사로잡히기 쉬워
과거 되돌릴 수 없어 고통받지만, 인생 새로 시작하면 고통 없을까
내 의지로 과거에 의미 부여하면, 실패조차 나를 만든 필연적 과정
인생의 여정을 흔히 길에 비유한다. 산다는 건 누군가 만들어 놓은 흔적을 따라가는 쉬운 일이기도 하지만 스스로 길을 내야 하는 힘든 과제이기도 하다. 매 순간 새로운 상황에 맞닥뜨리며 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하나를 포기해야 하기 때문에, 우리가 나중에 성취하지 못한 것에 대해 후회나 아쉬움, 미련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프로스트의 시를 우리의 현실에 적용해 보자. 만약 과거로 되돌아갈 수 있다면 어떤 결정을 할 것인가? 예를 들어, 다시 선택한다고 해도 지금의 일을 할 것인가? 아니면 다른 직업을 선택할 것인가? 만약 현재 벌이가 부족하다거나 직업 안정성이 떨어진다면 바꾸는 게 더 나아 보인다. 고수익과 성공이 보장되는 직업을 가지려면 치열한 경쟁을 뚫어야 할 테니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 그래야 과거의 나태함 때문에 지금의 인생이 망가졌다는 후회와 자책에서 벗어날 수 있다.
학업과 직업의 선택보다 훨씬 중요하고 어려운 것은 좋은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일이다. 친구든, 연인이든, 배우자든, 가족이든 우리는 만나서 애정과 신뢰를 쌓으며 인연을 맺는다. 그러나 감정은 변하기 마련이라, 다툼과 이별을 겪게 되면 과거에 이 사람을 만나지 않고 다른 사람을 선택했더라면 더 행복했을 것이라는 후회가 밀려온다. 니체는 이처럼 과거를 되돌릴 수 없어 생기는 마음의 고통을 해결하는 방법을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보여준다. 차라투스트라는 눈먼 자를 만나지만 세상을 볼 수 있게 해달라는 그들의 소원을 들어주지 않는다. 눈먼 자는 세상을 볼 수 있기를 원하지만, 만약 ‘눈을 뜨게 해준다고 해도 결국 볼 수 없는 것 혹은 보고 싶지 않은 것까지 너무 많이 보게 될 테니, 오히려 눈을 고쳐준 자를 저주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마찬가지로 과거로 되돌아가 인생을 새로 시작하고 싶다는 소원을 들어준다고 해도, 우리는 다른 선택으로 더 큰 고통을 겪을 가능성이 있다.후천적 장애인들이 다시는 신체적 장애가 없던 때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에 고통 받듯, 우리를 괴롭히는 것은 과거에 한 번 일어난 일을 되돌릴 수 없다는 사실이다. 시간은 과거, 현재, 미래라는 한 방향으로만 흘러가기 때문에 그 흐름에 거역할 수 없는 우리는 쓸쓸함과 슬픔을 느낀다. 우리가 화를 내든 절망하든 옛일은 굴릴 수 없는 돌덩이처럼 꿈쩍도 하지 않는다. 과거를 바꿀 수 없다는 사실에 분노하면 할수록 죄책감과 고통만 커진다.
그렇다면 어떻게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퍼즐을 맞추듯, 무의미한 우연처럼 보이는 과거의 조각들을 다시 짜 맞춰 현재와 미래의 의미를 새롭게 만들면 된다. 다시 말해 자신을 고통에서 스스로 구제하는 방법은 ‘과거의 조각돌과 수수께끼, 끔찍한 우연, 이것들을 하나로 압축해 모으는 일’을 통해 지난날 모든 것이 ‘그랬었지’에서 ‘나는 그러하기를 원했다’로 생각을 바꾸는 것이다. 과거는 한낱 흩어진 조각돌이고 수수께끼이며 끔찍한 우연에 불과해 보이지만, ‘나는 그러하기를 원했다’며 의지를 가지면 그 과거는 필연성을 갖게 된다.
예를 들어, 지난날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아 현재 불행해졌다고 자책하는 것보다 ‘나는 공부하지 않고 놀고 싶었다’란 적극적인 긍정으로 생각을 바꿔야 한다. 인생에서 공부를 잘하고 못하고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과거의 순간순간 이뤄진 수많은 선택과 결단을 통해 수많은 우연이 모여 현재의 나를 만들었기 때문에 인생에서 버려야 할 건 아무것도 없다.
니체는 ‘수천 가지의 길’이 있다고 했다. 각자 가야 할 다양한 길이 있다는 것이다. 매 순간의 선택과 만남, 인연이 우리 각자의 인생길을 이어 나간다. 인생에는 좋고 평탄한 길만 있는 게 아니다. 가끔 비탈길에 넘어지고 샛길로 빠지더라도, 모든 시행착오와 실패는 나의 인생길을 내는 데 도움이 된다. 과거의 수많은 길이 만나 지금의 나를 존재하게 한다는 인식이 중요하다. 니체의 ‘운명애(Amor Fati·아모르 파티)’란 가지 않은 다른 길에 대한 미련이 아니다. 그보다는 지금까지 자신이 걸어온 모든 길에 대한 절대적인 긍정을 의미한다.
강용수 고려대 철학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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