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타민계 에르메스’로 불리는 이중제형 영양제 시장을 잡기 위해 국내 제약사들이 각축전을 펴고 있다. 동아제약의 ‘오쏘몰 이뮨’이 시장을 연 뒤 종근당, 대웅제약 등 후발주자가 가세하면서다. 고용량 영양소를 섭취하는 ‘메가 도스’ 열풍이 코로나19 이후 헬시플레저(즐겁게 건강을 관리하는 것) 트렌드와 만나 영양제 시장 판도를 바꾸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메가 도스로 세포 기능 깨운다”
10일 한국건강기능식품협회에 따르면 2019년 2423억원 규모인 이중제형 등 복합제형 건기식 시장은 2023년 3261억원으로 커졌다. 지난해엔 3500억원을 넘었을 것으로 업계에선 추산했다. 6조원 규모인 국내 건기식 시장의 약 6%다.
그동안 출시된 멀티비타민은 대부분 성인 하루 권장 영양소에 맞춰 구성됐다. 오쏘몰 이뮨, 종근당 ‘아임비타 이뮨샷’, 대웅제약 ‘에너씨슬 퍼펙트샷’ 등 이중제형 영양제에는 비타민B, 비오틴 등 특정 영양소가 하루 권장 용량보다 10~40배 많이 포함됐다. 세포 기능을 깨우려면 일부 성분별로 메가 도스가 필요하다는 분자교정의학에 근거한 것이다. 노벨화학상 수상자 라이너스 폴링은 1968년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분자교정의학 관련 논문을 처음으로 발표했다. 임상 연구를 통해 뒷받침되지 못한 이론이었지만 폴링의 명성 덕분에 분자교정의학은 널리 퍼졌다.
1990년대 분자교정의학 영문명(오쏘몰레큘러)을 본떠 세워진 독일 건기식 기업 오쏘몰이 오쏘몰 이뮨으로 이중제형 영양제를 상업화했고, 2020년 동아제약이 수입을 시작하며 국내에서 새 시장을 열었다.
◇정제와 액상이 함께
이중제형 영양제에는 정제와 액상이 함께 들어 있다. 체내 흡수율과 생체 이용률을 최대화할 수 있는 제형이 영양소마다 다르다는 이유에서다. 영양제를 먹기 위해 별도로 물을 섭취할 필요도 없다. 각종 장점이 있는 것으로 전해지며 국내 정식 수입이 시작되기 전인 2015년께부터 ‘직구족’에겐 인기 품목이었다. 배우 김태희가 해외로 촬영을 가면 구입해 복용한다고 알려져 ‘김태희 비타민’이라는 별칭이 생겼다. SNS 등을 중심으로 제품 ‘팬덤’이 형성된 데다 때마침 헬시플레저 열풍이 불자 판매량이 급격히 늘었다. 대표 모바일 선물 플랫폼인 카카오톡 선물하기에서 지난해부터 ‘부동의 1위’인 커피 교환권을 누르고 1위를 유지하고 있다.
편의점에서도 인기다. CU에 따르면 편의점 건강기능제품군 중 비타민류 매출 비중은 지난해 7월 기준 53.1%로 부동의 1위인 홍삼(46.9%)을 앞질렀다. 이중제형 제품 출시가 시장 변화를 주도했다는 분석이다.
◇‘김태희 비타민’ ‘1초 비타민’ 각축
2020년 87억원인 오쏘몰 이뮨 매출은 2023년 1204억원으로 출시 3년 만에 연 매출 1000억원을 넘었다. 지난해 3분기까지 누적 매출은 956억원으로 전년(동기 매출 908억원)에 이어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2022년 10월 출시된 아임비타는 이듬해인 2023년 8월 1초에 1개씩 팔려나간다는 의미로 ‘1초 비타민’이란 별칭이 붙었다. 출시 3년을 맞은 지난해 10월 기준 판매량 3000만 병을 돌파했다. 지난해 누적 매출 1000억원을 넘어선 것으로 추산된다. 2023년 5월 시장에 진입한 에너씨슬은 올해 1월 누적 판매량 600만 병을 넘었다. 삼진제약 ‘하루엔진 이뮨 부스터샷’, 일동제약 ‘마이니 부스터 비타민’ 등도 시장 점유율을 확대하고 있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