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태 칼럼] 서울대 10개 만든다는 공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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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태 칼럼] 서울대 10개 만든다는 공약

1주일 뒤면 새 정부가 출범한다. 대선 바로 다음 날부터다. 두 달의 인수위원회 기간도 없다. 8년 전 같은 처지였던 문재인 정부는 출범 195일 만에야 내각 구성을 완료했다. 지난 6개월의 국정 혼돈을 매듭지어야 하고 그때보다 할 일이 많아 지켜보는 국민도 마음이 급하다.

먼저 7월 초까지 일괄 타결하기로 한 미국과의 관세 협상이 기다리고 있다. 최근 2차 실무협의를 마쳤지만, 마무리는 새 정부가 해야 한다. 성과에 목마른 트럼프의 채근에 당황하지 않고 대응하는 게 관건이다. 악화일로인 경기와 민생 문제 해결도 발등의 불이다. 수출마저 내리막이라 기댈 언덕도 사라졌다. 10월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준비도 꼼꼼히 점검해야 한다. 새만금 잼버리 같은 부실이 용납될 수 없는 빅 이벤트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바로 챙겨야 할 일들이다.

그래도 공약 실행은 좀 여유가 있다. 꼭 해야 할 것, 미뤄도 될 것,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차분히 정하면 된다. 인공지능(AI)부터 반려동물까지 다 쓸어 담은 대선 공약 중 개인적으로 ‘꼭 해야 할 공약 리스트’에 넣길 바라는 것도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서울대 10개 만들기’와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의 ‘서울대-지역 거점대 간 공동학위제’ 공약이 그렇다. 지역거점국립대(강원대·경북대·경상국립대·부산대·전남대·전북대·제주대·충남대·충북대)를 키우겠다는 점에선 크게 다르지 않다.

1990년대 말 등장한 ‘서울대 폐지(해체)론’과 맞닿아 있는 것 같지만, 폐지론이 하향 평준화 비판을 피할 수 없었던 데 비해 상향 평준화를 하자는 것이니 명분이 있다. 정교하게 추진한다면 대학 서열화와 지방 소멸의 동시 해법이 될 수 있다고 본다. 공약(空約)이 안 되기를 바라는 공약(公約)이다.

걱정은 있다. 서울대 10개를 듣는 순간 프로야구 10개 구단이 떠올랐다. 야구 중계를 즐겨 보는 편인데 짜증지수가 솟구치는 때가 종종 있다. 나오는 투수마다 볼만 던져대거나 평범한 외야 뜬공을 놓치는 등 프로가 맞나 싶은 장면이 잦아서다. 100개를 겨우 넘는 고교 야구팀 수에 비해 10개 구단 체제가 과도해서라는 지적이 많다. 그래도 야구는 자기 팀을 응원하며 즐기면 그만이다. 1000만 관중 시대를 여는 데 팀 증가의 역할도 컸다.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다르다. 9개 거점국립대를 서울대처럼 만들자는 것인데 당장 ‘어떻게’라는 질문이 나올 수밖에 없다.

관건은 예산이다. 2023년 기준 서울대의 학생 1인당 교육비는 6059만원이다. 거점국립대 9곳의 평균은 그 절반에도 못 미치는 2450만원이다. 이를 서울대의 70~80%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데만 매년 3조원 가까운 돈이 필요하다. 연간 100조원 안팎의 재정적자가 발생하는 현실에서는 만만치 않은 액수다. 적당히 예산을 끌어모아 골고루 나눠주면 난로 위에 떨어진 눈 녹듯 사라질 뿐이다. 우수한 교수진을 확보하는 것도 쉽지 않다.

꼭 9곳을 고집할 게 아니라 세계적 수준에서 경쟁할 지역 대학을 3~4곳만 키워내도 대성공이다. 경쟁력 있는 지역 국립대가 많은 일본도 세계 대학 순위 200위 이내에 드는 건 교토대, 오사카대, 도호쿠대, 나고야대 등 6개 대학 정도다. 정치적 부담이 작지 않겠지만 특성화 방안 등 종합발전계획을 세우게 해 선정하면 된다. ‘벚꽃 피는 순서대로 망한다’는 말도 있으니 수도권에서 먼 대학이 우선 선정된다면 금상첨화다. 긴 호흡으로 성공 경험을 쌓고 확산해 나가면 된다. ‘인서울’로 빠져나가는 인재를 붙들 수 있는 대학이 지역에 생긴다면 굳이 등 떠밀지 않아도 기업은 알아서 찾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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