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태 칼럼] '韓·日 경제연합'이라는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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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태 칼럼] '韓·日 경제연합'이라는 꿈

소니픽처스 애니메이션이 한국계 아트 디렉터를 대거 참여시켜 만든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전 세계에서 흥행 돌풍 중이다. K팝과 오컬트 액션을 결합한 애니메이션으로 넷플릭스의 글로벌 영화 부문 1위를 차지하고, OST 앨범도 빌보드 등 주요 음악 차트 순위에 오르며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다.

영화는 공개 하루 만인 지난 21일 미국, 영국, 일본 등 22개국에서 1위를 차지했다. 제작진이 한국을 찾아와 명동과 민속촌 등을 탐방하며 완성한 디테일에 국내 시청자도 놀랐다고 한다. 소니라는 일본 기업이 한국의 콘텐츠인 K팝을 주제로 미국에서 자신들의 콘텐츠를 만들어 히트한 것이다. 일본 애니메이션을 가장 많이 수입하는 나라가 한국이고, 한국의 음악 콘텐츠를 가장 많이 소비하는 나라가 일본이니 그럴 법도 하다. 최근 경제계에서 제기하는 ‘한·일 경제연합’론이 생각나는 대목이기도 하다.

‘한·일 경제연합’은 무역 거래를 넘어 경제 정책과 시스템까지 연대하자는 주장이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최태원 회장이 그간 여러 차례 밝힌 구상을 <새로운 질서 새로운 성장>이라는 책자에 담아 새 정부에도 제안했다. 양국이 손을 잡으면 미국, 유럽연합(EU), 중국을 잇는 6조~7조달러(약 8200조~9500조원) 규모의 시장이 탄생하며, 이를 토대로 EU와 같은 아시안연합(AU)으로 확장하자는 것이다. 강점 분야에서 협력하고 서로를 제2의 내수시장 삼아 규모의 경제를 달성한다면 고령화 시대에도 생산성을 높일 수 있고, 글로벌 무대에선 ‘규칙 추종자’(rule taker)가 아니라 ‘규칙 제정자’(rule setter)가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경제 규모가 절반에 채 못 미치는 나라가 그것도 과거 식민 지배국이던 상대에게 먼저 경제 연합을 제안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일단 국내의 반감은 별로 없는 듯하다. 추진한다고 해도 하루이틀 새 이뤄질 일이 아닌 데다 그만큼 우리 경제의 자신감이 커졌기 때문일 것이다. 일본에 경제가 종속될 것이라는 우려와 달리 1965년 수교 당시 9배 차이가 난 양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이제는 대등해졌다는 사실만 보더라도 지레 겁먹을 이유가 없다.

한·일이 손을 잡아야 할 절박함도 커졌다. 저출생·고령화와 성장 정체라는 ‘동병상련’ 외에 미국·중국의 패권전쟁, 북한·러시아의 밀착 등 단독으로 대응하기엔 어려운 과제에 직면했다는 공통점도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가 불러온 새로운 무역·안보 환경 역시 그 어느 때보다 양국이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게 했다. 수교부터 한·미·일 협력의 틀을 만들기까지 양국의 화해를 누구보다 재촉한 게 미국인데, 정작 한·일 협력에 별다른 관심이 없는 트럼프 시대가 가져온 역설적인 변화다. 양국의 산업 구조가 경쟁보다 협력이 이득인 쪽으로 바뀐 것도 고무적이다.

다행히 새 정부 일각에서 21년째 멈춰 있는 한·일 자유무역협정(FTA) 논의 재개에 관심을 보이고 있고 일본이 주도한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에 가입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 역시 일본과의 외교에서 첫 단추를 잘 끼운 듯하다. 이시바 시게루 총리와의 정상회담 이후 일본도 ‘반일(反日) 대통령’ 우려를 일단은 내려놓은 모양새다.

한 해 1200만 명이 넘는 한국인과 일본인이 상대국을 방문하는 시대다. 더 이상 반일이 정치적으로 유용한 상품이 될 수 없다는 의미다. 경제연합이 아직은 구상 단계에 불과하지만, ‘미래는 꿈꾸는 사람의 것’이라는 말처럼 결국은 지난 60년과는 전혀 다른 한·일 관계를 꿈꾸는 사람들이 새로운 미래를 열어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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