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후의 재계 인사이드] 젤렌스키를 본 재계의 불안한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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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후의 재계 인사이드] 젤렌스키를 본 재계의 불안한 시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저서 <거래의 기술>에서 자신의 협상 기술을 자랑하듯 늘어놨다. 그는 ‘하는 일’(사업)을 ‘재미있는 게임’(협상)으로 만드는 자세로 임한다고 썼다. 그는 “거래를 성사시키는 방법은 간단하고 분명한데, 목표를 높게 잡으면 그에 못 미치더라도 어느 정도 달성할 수 있다”고 했다.

협상에 임하는 과정도 자세히 적었다. “크게 생각하고, 남에겐 없는 영향력을 지렛대로 사용하라”고 했다. 요컨대 지금 트럼프 대통령만 갖고 있는 영향력은 미국 대통령이란 직위이고, 목표를 높게 잡거나 크게 생각하라는 건 협상 시작 전부터 상대가 위축될 정도로 크게 지르는 트럼프 대통령 특유의 전략과 맥이 통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한 지난 1월 20일부터 우리는 매일 이런 일들을 목격하고 있다. 40여 일 동안 그가 서명한 행정명령만 40건이 넘는다. 자유무역협정(FTA)을 무시한 ‘관세 폭탄’부터 캐나다와 그린란드를 미국에 편입하겠다는 엄포, 멕시코만 명칭 변경, 파나마운하 운영권 회수 등에 이르기까지 하나같이 핵폭탄급 파괴력을 가진 사안들이다. ‘슈퍼 파워’를 가진 사람이 이렇게 ‘아메리카 퍼스트’를 외치니, 전 세계가 숨죽일 수밖에 없다.

하이라이트는 지난달 28일 열린 블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의 회담이었다. 한 나라의 정상을 백악관으로 초청해놓고선 “당신은 좋은 포지션이 아니다. 당신은 카드가 없다”고 윽박질렀다. JD 밴스 미국 부통령과 함께 젤렌스크 대통령을 협공하는 장면은 온라인을 타고 의도된 대로 전 세계에 생중계됐다.

"모든 건 협상"이라는 트럼프

문제는 면박을 당한 젤렌스키 대통령의 처지가 남 얘기가 아닐 수도 있다는 데 있다. 한국 대통령도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 관세와 방위비 분담 등을 논의해야 하는데, 트럼프 대통령이 얼마나 호의적으로 나올지 짐작하기 힘들어서다. 그나마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 담판을 지을 수장조차 없으니, 무차별 관세 폭탄과 보조금 지급 축소 움직임 등으로 가뜩이나 불확실성에 빠진 우리 기업 입장에선 답답하기만 할 따름이다.

기회로 만들 지도자 필요

[김재후의 재계 인사이드] 젤렌스키를 본 재계의 불안한 시선

일본과 프랑스, 캐나다 등 다른 우방국 정상은 트럼프 대통령 취임 직후 발 빠르게 만나 협의의 물꼬를 텄다. 비상계엄과 탄핵 사태로 미국 우방 가운데 ‘골든타임’을 놓친 건 한국뿐이다. 헌법재판소는 이달 탄핵심판 결과를 내놓는다. 헌재가 탄핵을 인용하지 않을 경우 큰 상처를 입은 윤석열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의 협상 파트너가 된다. 헌재가 탄핵을 인용하면 한·미 정상 간 만남은 수개월 더 미뤄진다. 시간이 흐를수록 불리해지는 건 우리다. 차기 대통령감으로 거론되는 후보들이 게임처럼 협상하는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 한국 기업에 유리한 결과를 안겨줄지도 알 수 없다.

가장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만 봐도 그렇다. 그동안 보여준 말과 행동으로 가늠해볼 때 이 대표가 우리 기업에 가장 유리한 방향으로 트럼프 대통령과 협상에 나설지는 미지수다. 반도체 기업이 그토록 애원한 연구개발(R&D) 인력에 대한 주 52시간 근무제 예외 요청을 끝내 외면했다. 국민의힘 대선 후보 중에도 우리에게 가장 유리한 쪽으로 트럼프 대통령과 협상을 이끌 전략 및 강단을 지닌 사람은 눈에 띄지 않는다. “지금 대선 후보 중 세계지도를 놓고 큰 판을 그릴 줄 아는 사람이 있느냐. 글로벌 마인드 없이 그저 국내 유권자 표만 좇는 ‘내수 정치인’ 아니냐”는 말이 산업계에서 나오는 이유다.

트럼프 대통령은 적국과 동맹국을 가리지 않는다. 기존 질서와 규칙을 지킬 생각도 없어 보인다. 오로지 미국에 이익이 되는지는 잣대로 상대방을 몰아붙인다. 이런 ‘변칙 복서’에 맞설 우리 대표가 표 되는 일만 찾아다니는 내수용 정치인이라면 한국의 미래는 뻔하다. ‘중국 봉쇄’를 내건 트럼프 2.0 시대를 한국 기업의 새로운 기회로 만들기 위해 밤낮없이 고민하는 지도자가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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