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수의 디코드 차이나] 탈중국 넘어, 용중(用中)의 시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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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2026.03.27 17:52 수정2026.03.27 17:52 지면A21

중국 상하이를 찾는 한국인이 부쩍 늘었다. 1920년대 유럽풍 건축물이 즐비한 거리인 우캉루 등 주요 명소엔 트렌디한 차림새의 한국 젊은이가 자주 눈에 띈다. 여행객만이 아니다. ‘딥시크 쇼크’ 이후 중국 혁신 현장을 찾는 기업인과 정치인의 발걸음도 이어지고 있다. 이들이 던지는 질문이 있다. “중국에 아직 기회가 있는가?”

中 배제한 공급망 동맹은 한계

[김영수의 디코드 차이나] 탈중국 넘어, 용중(用中)의 시대로

2016년 중국의 사드 보복 이후 탈중국 행렬이 이어졌다. 컨트리 리스크(국가 위험)는 현실화했고, 중국 기업의 역습이 시작됐다. 현대자동차, 삼성 스마트폰,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가 대륙을 호령하던 시절은 아득해졌다. 여기에 미·중 경쟁 격화는 디커플링(탈동조화) 추세에 기름을 부었다. 중국을 배제한 시장과 공급망 재편 등의 영향 속에서 모두가 미국으로 눈을 돌렸다.

중국에 밀리던 배터리 기업에도 기회가 왔다. 미국 자동차 빅3 기업과 수십조원대 합작 계약을 맺었다. 환호는 오래가지 않았다. 2025년 전기차 판매가 급감하자 빅3는 배터리 합작부터 칼을 댔다. 포드는 한술 더 떠 중국 CATL의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기술을 라이선싱했다. 냉혹한 경제 논리 앞에 ‘탈 중국 공급망 동맹’은 한계를 드러냈다.

결국 본질은 경쟁력이다. 모두가 중국과의 거리두기를 외칠 때, 새로운 협력 모델로 판을 바꾸는 기업이 나타나고 있다. 중국을 피하는 대신 냉정하게 역이용하는 ‘용중(用中)’의 지혜를 통해 시장·공급망·혁신, 세 축에서 조용한 변화가 진행 중이다.

중국 샤먼 완샹청의 휠라 매장. /휠라 제공

중국 샤먼 완샹청의 휠라 매장. /휠라 제공

국내 기업 휠라(FILA)는 거대한 중국 시장을 재공략 중이다. 중국 스포츠 브랜드 안타(Anta)와 조인트벤처(JV)를 설립해 사업 운영을 이 회사에 맡겼다. 이 JV는 중국 내에서 매출 5조원대 규모 회사로 성장했고, 휠라는 연간 약 1000억 원의 로열티를 챙긴다. 로컬 역량을 제대로 활용한 사례다.

중국은 배터리·전기차·로봇 등 첨단 산업의 글로벌 지배력을 확보한 중국의 공급망 협력을 업그레이드하며 ‘슈퍼 을’의 자리를 지키는 국내 기업들도 있다. 경북 구미에 있는 배터리 장비 중견기업 피엔티는 중국 배터리 기업 ‘고션(Gotion)’과 ‘EVE에너지’의 유럽 신규 공장에 전극 공정 장비를 공급하며 글로벌 확장을 가속화하고 있다. 비결은 대체 불가능한 기술과 장기간 쌓은 신뢰다.

중국과 새 협력 모델 구축해야

중국 기업과의 혁신 결합도 빈번히 이뤄지고 있다. 리딩 인공지능(AI) 코딩 툴인 ‘커서(Cursor)’가 최근 발표한 새 모델은 알고 보니 중국 오픈소스 AI 키미(Kimi) 기반이었다. 실리콘밸리도 외면할 수 없는 중국의 압도적 성능과 효율을 전략적으로 활용한 사례다. JW중외제약은 중국 AI 바이오기업 징타이테크와의 협력을 통해 실험 생산성을 5배 이상 끌어올리며 신약 개발 자동화를 추진 중이다.

얀 마텔의 소설 <라이프 오브 파이>에서 소년 파이는 굶주린 벵골 호랑이와 구명보트 위에서 227일을 버틴다. 그는 호랑이를 바다로 밀어내지 않는다. 호랑이를 잃는 순간, 자신을 지탱하던 긴장감과 생존 본능마저 무너질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중국은 우리에게 불편하고 위협적이지만, 함께 버텨야 살아남는 그런 존재 아닐까?

김영수 베이징대 한반도연구센터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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