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재의 유러피언 코드] 獨·英·佛 서로 다른 소비 공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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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재의 유러피언 코드] 獨·英·佛 서로 다른 소비 공식

유럽 거리를 걷다가 “Japan or China?(일본인이냐, 중국인이냐?)”라는 질문을 받는다. 눈을 흘겨 뜨며 “Korea(한국인)”라고 답하지만 영 개운치 않다. 대도시에서는 바로 정답을 맞히는 사람도 간혹 있지만, 동양인의 국적은 유럽인에게 여전히 수수께끼다. 그렇다면 ‘나’는 독일·영국·프랑스 사람의 외모를 보고 국적을 구분할 수 있을까? 스스로 반문하는 순간 언짢은 마음이 조금 가라앉는다. 사실 유럽, 그중에서도 독·영·불 3개국의 문화적 차이는 우리가 생각하는 한·중·일의 차이만큼이나 크다. 외견상 비슷해 보이는 서유럽 시장이지만, 소비자의 판단 기준과 사고 방식은 나라별로 확연히 다르다.

독일은 절약, 영국은 소비처 변화

중동 전쟁 이후 당연히 서유럽 3개국의 소비 패턴에도 차이가 나타났다. 유가 급등이 물가를 밀어 올리고, 장바구니로 전이되는 것은 어디나 매한가지다. 특히, 불황기에 소비가 ‘소득’보다 ‘심리’에 좌우되는 패턴은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불확실성이 커질 때 지출을 줄이기보다 소비 방식을 바꾸는 모습에서 독일·영국·프랑스의 소비자는 다른 궤적을 보였다.

 ChatG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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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은 이미 저가의 실속형 소비가 대세로 자리 잡은 시장이다. 독일인들은 평시에도 ‘하드 디스카운터’(최저가 위주의 대형 슈퍼마켓)를 애용한다.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하드 디스카운터 쇼핑백을 창피하다며 감추는 사람이 많았다. 그러나 저성장이 일상화한 요즘 독일 사람들에게 절약은 미덕이 아니라 필수다. 불황기에도 새로운 유통 채널로 갈아타기보다는 절약하던 패턴을 더욱 강화하는 양상을 보인다. 매장 내 상품 진열은 더 단순해지고, 상품 구성은 가성비 효율 위주로 재편됐다. 자체브랜드(PB) 비중이 확대되고 브랜드 제품의 존재감은 약해졌다. 하나 특이한 것은 불황의 여파로 일상 소비는 극단적으로 줄어들지만, 실리 위주의 독일인답게 건강·기능성·친환경 영역의 지출은 유지한다.

영국은 구조가 다르다. 일반적으로 소득 수준에 따라 즐겨 찾는 유통 채널이 나뉘어 있다. 중간 가격대 매장과 프리미엄 채널이 공존하고, 계층별로 장을 보는 장소가 비교적 명확하게 구분된다. 그러나 불황기에는 중산층이 더 싼 상점을 찾아 이동하는 ‘다운 트레이딩’ 현상이 뚜렷해진다. 즉, 독일이 하나의 채널로 수렴된 시장이라면, 영국은 채널 간 이동이 발생하는 시장이다. 이 과정에서 할인과 프로모션, 멤버십 의존도가 높아지고 PB 비중도 빠르게 높아진다. 이 시기에는 소비 기준에 제품 가격뿐 아니라 편의성과 부대 비용 절감까지 중요해진다. 간편식과 즉석 제품이 확대되며, 시간과 유류비를 아낄 수 있는 온라인 장보기와 배송 비중도 증가한다.

품질·감성 균형 찾는 프랑스

프랑스는 식문화가 소비를 지배한다. “잘 먹는 것이 곧 잘 사는 것”이라는 말을 즐겨하는 프랑스 사람들답게 먹는 ‘질’은 쉽게 낮추지 않는다. 대신 소비 방식이 변한다. 외식이 줄고 가정 내 소비가 증가한다. 대형마트 위주의 구매가 뚜렷해지며, 이들이 유통업계의 가격 경쟁을 주도한다. 그러나 PB 비중이 높아지기보다는 신선식품과 지역성에 대한 선호가 유지된다. 가격을 따지면서도 품질과 원산지 기준은 쉽게 양보하지 않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절약하지만 포기하지 않는 소비 현상이 나타난다. 품질과 감성의 균형을 유지하려는 경향이 식품뿐 아니라 가계 소비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유럽은 같지만 다른 시장이다. 독일은 효율, 영국은 구조, 프랑스는 문화로 움직이고, 불황기일수록 이 차이는 더 선명해진다. 같은 유럽이라도 소비자의 기준이 다르면 유통 채널과 구매 패턴도 달라진다. 독일에서는 가격과 기능, 영국에서는 채널별 이중 전략, 프랑스에서는 품질과 스토리가 필요하다. 같은 제품이라도 국가별로 다른 언어로 설명해야 한다. 결국 시장 진출의 성패는 제품뿐만 아니라 그 나라 소비자의 고유한 문법을 이해하는 독해 능력에 달려 있다.

김연재 KOTRA 유럽지역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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