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거 공사가 한창인 서울 중림동 서소문고가도로 인근 이면도로. 운행 중인 자동차를 구경하기 힘들던 이곳에 언제부터인가 출퇴근 시간에 덜 막히는 길을 찾아 몰려든 차량이 꼬리를 물기 시작했다. 지난해 말 고가도로가 철거되자 그 주변은 큰길, 작은 길 가릴 것 없이 교통체증이 이어지고 있다.
도로를 건너는 사람과 갈 길을 재촉하는 자동차가 뒤섞인 아찔한 혼잡상에 신경이 잔뜩 곤두섰다가 그동안 무심히 넘긴 사실이 떠올랐다. 1966년 건설된 서소문고가도로가 쉰아홉 살이나 먹은 낡은 건축물로 해체 후 재시공이 불가피한 ‘고위험’ 인프라였다는 점이다.
도로와 다리, 댐과 같은 사회간접자본(SOC)의 수명은 무한하지 않다. 조금만 사람 손을 타지 않으면 흉물이 되기 십상이다. 수시로 닦고, 조이고, 기름치고, 관리해야 한다. 화려한 외형에 가려진 서울의 ‘속살’은 심각할 정도로 삭아 있다. 서울 하수관로(1만866㎞) 중 55.5%(6029㎞)는 부설된 지 30년이 넘은 정비 대상 관로다.(2026년 서울시 발표 기준) 설치 50년이 넘은 초고령 관로만 30.4%(3303㎞)에 달한다. 한강을 가로지르는 33개 다리 중 19개가 1980년대 이전에 건설됐다. 사람과 돈이 집중된 서울이 이 정도니, 지방 사정은 더 말할 것도 없을 듯하다.
느닷없이 낡은 인프라 걱정을 한 것은 지난달 정부가 주요 지역 사업의 예비타당성조사 기준을 대폭 손질한다는 소식을 접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앞으로 예타 조사를 할 때 인구감소지역에서 시행하는 사업은 경제성보다 지역 발전 가능성에 더 높은 가중치를 두기로 했다. 지방 소멸을 막고 균형 성장을 유도하려는 조치다.
정책 취지야 나무라기 힘들다. 하지만 향후 제대로 이용하는 사람도 없고 관리마저 버거운 대형 애물단지만 양산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가 적지 않다.
조건반사적으로 우리보다 앞서 인구 고령화와 지방 소멸을 겪었고, 무분별한 인프라 투자가 사회적 골칫덩이가 된 일본의 사례도 떠올랐다. 일본은 전국 73만 개 다리 중 약 37%(2023년 기준)가 건설된 지 50년이 넘은 낙후 시설이다. 2030년에는 54%, 2040년에는 75%로 50년 이상 된 교량 비율이 급증한다. 고도성장기에 고령화와 지역 공동화를 고려하지 않고 지역마다 경쟁적으로 다리를 놓고 도로를 건설한 후과다.
일본 정부는 올해부터 5년간 민관이 공동으로 20조엔(약 190조2480억원)을 투입하는 ‘국토 강인화 실시 중기계획’을 시행하고 있다. 계획의 상당 부분은 노후 인프라 정비가 차지한다. 설치 30년이 넘는 대형 하수관을 2030년까지 모두 새것으로 교체하기로 했지만, 제대로 바꾸고 관리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우리 곁에는 일본이라는 ‘먼저 온 미래’가 있다. 반면교사로 삼든 벤치마킹하든 그들의 행보를 잘 살펴보고 신중하게 정책을 펼 필요가 있다. 특히 일본 사회가 택한 처방 중 지방 도시 원도심에 인프라와 고령 거주자를 집중시키는 ‘콤팩트시티’(압축 도시) 전략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감당하지 못할 새로운 인프라를 건설하는 게 아니라 인구가 줄더라도 한데 모여서 도로와 병원, 대중교통 같은 생활 인프라를 최소 비용으로 유지하자는 것이다.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역 표심을 잡으려는 정치권이 예타 조사 기준 완화를 이용해 SOC 사업 요구를 쏟아낼 것이란 전망이 적지 않다. 지역 균형발전도 좋지만, 텅 빈 공간을 빈틈없이 빽빽하게 채우려는 것은 과욕이다. 허상을 좇을 게 아니라 냉정한 판단력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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