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은 (자녀) 글쓰기 교육을 어떻게 하세요?”
종종 듣는 질문이다. 얼마 전 기자 출신 방송인이 자녀 글쓰기 교육을 준비 중이라며 방법을 물었다. 기자는 글쓰기를 업으로 하는 사람 아닌가. 글쓰기라면 누구보다 전문가인 그가 던진 질문에 어안이 벙벙했다. 교육엔 잔뼈가 굵은 나. 무언가 도움을 줄 게 없을까 그때부터 곰곰이 고민했다. 머릿속 뿌연 안개가 걷히며 팝콘처럼 튀어나온 말. “빨간펜 대신 질문과 대화!”
글쓰는 즐거움 키워줘야
자녀에게 마음먹고 글쓰기 교육을 따로 한 적이 없다. 하지만 아이는 글쓰기를 즐긴다. 즐길 수 있는 이유. 바로 빨간펜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감정과 생각을 표현하는 걸 좋아한다. 글로, 그림으로, 만들기로, 노래로, 옹알이로, 울음으로 최선을 다해 표현한다. 소근육 발달이 덜 돼 어른들이 보기엔 단지 초록 물감을 뿌린 듯 보일지라도 숲을 표현한 멋진 그림일 수 있다. 그림책을 보고, 그림으로 표현하다 글을 읽고 쓸 수 있게 되면 조금씩 글을 쓴다. 학교에 들어가면 일기, 독후감 숙제도 생긴다. 좋아서 하던 일도 누군가 시켜서 하면 어쩐지 하기 싫어지게 마련.
아이는 열심히 썼다. 그런데 자신이 쓴 글이 맞춤법, 어법에 안 맞는다고 빨간펜으로 교정까지 더해진다면 어떨까. 그야말로 하기 싫은 일이 된다. 독후감, 일기, 주장하는 글은 각각 어떤 형식으로 써야 하고, 문단은 어떻게 나눠야 하고, 문체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설명은 나중으로 미루자. 최소한 맞춤법은 고쳐줘야 하지 않냐고? 아이들이 배울 기회는 많다. 혼자 책을 읽으면서도 깨닫고, 국어 시간에도 배운다. 일기에 틀린 띄어쓰기와 맞춤법 열 가지가 있으면 심각한 것 한 가지만 알려줘도 충분하다.
글 쓰는 게 재밌으면 글쓰기 교육은 성공이다. 재밌으면 계속하고 싶어지고, 하다 보면 잘하게 되니까. 소재를 메모하고, 읽고 느낀 걸 글로 표현하고, 나아가 공부한 걸 생각과 연결해 글로 써서 매듭짓는 습관이 생긴다.
대화·토론으로 생각 나눠야
빨간펜은 치워두고 글의 소재와 내용에 대해 충분한 질문을 던지고 대화하자. 책 읽고, 함께 생각을 나누고, 글 쓰고 토론하는 시간. 그럴듯해 보이는 남의 생각이 아니라 유치해도 엉뚱해도 혹은 특별할 게 없어도 괜찮은 진짜 내 생각을 나누는 유쾌한 시간. 아이의 생각에 진심 어린 호기심을 보이자.
일기를 쓰려는데 쓸 게 없다는 자녀가 있다면 함께 대화를 통해 소재를 찾자. 저녁에 비빔밥을 맛있게 해 먹었다면 어떤 나물을 넣었고 그때 맛이 어땠는지 떠올리며 표현해보면 된다. 특별한 여행, 사건이 없었어도 충분히 일기의 소재를 찾을 수 있다. 생활 속에서 글의 소재를 찾는 방법을 부모와 자녀의 대화에서 찾을 수 있다.
느긋한 마음으로 자녀의 마음과 목소리에 열과 성을 다해 귀를 열고 듣고자 하면 느껴지고 들린다. 어떤 데 흥미가 있고 열정이 있는지. 상황이 허락하는 한에서 시간을 내 함께 경험하고, 나누자. 맞춤법, 띄어쓰기? 그까짓 거 좀 틀리면 어떤가. 1주일에 하나만 고쳐도 충분하다. 재밌어야 신나서 하고, 오래 하고, 발전한다. 누구나 헤밍웨이가 될 순 없지만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행복한 수필가가 될 순 있다. 인생은 길지 않은가.
김나영 서울 양정중 교사·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