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여 년 군 생활을 마치고 전역한 지 3년이 돼가는 예비역 장교다. 오래간만에 현역 후배 장교들을 만나 술잔을 기울이다가 이사 이야기가 나왔다. 필자는 더 이상 잦은 이사로 고생하지 않아도 되지만 후배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이제는 정말 달라져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군인들의 주거환경 개선을 위한 정책적이고 시스템적인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
군인들은 인사명령에 따라 이동해야 하는데 이동의 개념에는 온 가족이 함께 움직이는 ‘이사’가 포함돼 있다. 이사 절차는 군 관사를 배정받는 것에서 시작하는데 관사 배정이 짧게는 수일에서 길게는 2~3개월이 소요된다. 그동안은 가족과 떨어져 지내야 한다. 어렵게 배정받은 관사는 상태에 따라 도배와 장판 교체, 입주 청소를 해야 한다. 도배와 장판은 물론 입주 청소까지 전액 자비 부담해야 할 때가 많다. 이 밖에 군 관사에 시스템 에어컨이 설치돼 있지 않아 에어컨 해체, 설치를 반복해야 하는데, 사실 4~5회 이사를 하면 신형 에어컨 한 대를 구매할 정도의 비용이 나온다.
이렇게 어려운 환경 속에서 강한 군대를 위한 필수조건인 군 사기 증진을 기대하기란 요원하다. 안정적인 주거환경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군인들은 주어진 임무에 집중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장기적으로 우수한 인재들이 장기 복무를 선택하는 데 걸림돌이 된다. 젊은이들에게 국가에 대한 충성심만으로 간부를 선택하고 군의 미래를 짊어져 달라고 하기엔 시대적 환경이 달라졌다. 가족이 안정적으로 생활하기 힘들다면 군조직에 대한 충성심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장기적으로 우수한 인재를 군에 유치하기 어렵다는 것도 인정해야 하는 현실이다.
물론 군인이라는 직업 때문에 이사는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운명이다. 상황에 따라서는 부부간 따로 또는 자녀까지 따로 사는 이산가족 군인이 적지 않다. 대부분 간부는 이런 여건을 알면서도 국가와 국민을 수호한다는 사명감과 자부심으로 군인의 삶을 살아낸다. 잦은 이사야 어쩔 수 없다고 해도 조금 더 안정적으로, 신경을 덜 쓰면서 이사할 수 있다면 더욱 임무에 집중하고 결과적으로 강한 군대 건설에 이바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관사 배정에서 이사 업체 선정, 이사 과정과 이사 후 낯선 곳에서의 여러 생활 제반 사항까지 지원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신청 절차를 간소화하고 지원 체계를 개편할 정책과 제도가 필요하다. 이는 군인의 복무 의지 향상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시대에 맞는 정책과 제도를 구축해 군인의 주거복지 환경을 개선하는 것은 단순히 군인에 대한 편의 제공 차원이 아니다. 군대의 전투력 강화와 군인의 사기 증진, 장기 복무 인재 유치 등 강한 군대를 건설하는 필수 조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