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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현장을 가다/임우선]“교회, 학교, 병원도 예외 없다”… 불법 이민자 단속 공포 커지는 미국

2 weeks ago 5

트럼프 2기, 논란 커지는 불법 이민자 단속
교회부터 거리까지 외부 활동 위축… 언어 장벽 가진 非백인들 불안 호소
합법 거주자도 여권 지니고 다녀… 전문가들 “최신판 인종 차별” 지적
학교 당국 “보호 최선 다할 것” 강조… 트럼프, 수치 불만족에 할당량 압력

24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 맨해튼의 세인트 폴 앤드 세인트 앤드루 교회 앞에 ICE 및 국토안보부 요원들의 출입을 불허한다는 팻말이 붙어 있다. 최근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교회, 학교, 병원에서도 불법 이민자 단속을 벌일 수 있다고 밝히며 단속을 강화하고 있다. 뉴욕=임우선 특파원 imsun@donga.com

24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 맨해튼의 세인트 폴 앤드 세인트 앤드루 교회 앞에 ICE 및 국토안보부 요원들의 출입을 불허한다는 팻말이 붙어 있다. 최근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교회, 학교, 병원에서도 불법 이민자 단속을 벌일 수 있다고 밝히며 단속을 강화하고 있다. 뉴욕=임우선 특파원 imsun@donga.com

임우선 뉴욕 특파원

임우선 뉴욕 특파원
《24일(현지 시간) 뉴욕 맨해튼의 세인트 폴 앤드 세인트 앤드루 교회 앞. 이곳 정문에는 ‘이민세관단속국(ICE) 및 국토안보부 요원들은 판사가 서명한 영장 없이 들어올 수 없다’라는 푯말이 붙어 있었다. 최근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미 전역을 휩쓸고 있는 불법 이민자 단속이 교회 내에서 이뤄질 것을 경계하는 문구였다. 지난달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 내에서 2011년부터 15년 가까이 유지돼 온‘민감구역(sensitive locations)’ 정책을 철회한다고 밝혔다. 그간 이민법 집행 시에 예외 장소로 삼아왔던 교회, 학교, 병원 등에서도 이제는 불법 이민자 단속 및 체포를 할 수 있다고 천명한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공격적 단속 의지가 공표된 요즘 이민자들의 불안감은 극도로 높아진 상태다. 뉴욕 맨해튼 지하철 역에서 늘 보이던 라틴계 노점상들도 요즘은 그 수가 줄었다. 유동인구가 많은 지하철 통로나 플랫폼 한 구석에서 아이스박스에 담은 캔 음료나 투명컵에 담은 열대 과일, 초콜릿 등을 팔던 이들 중 많은 수가 언제부턴가 보이지 않는 것이다.

● “합법 이민자도 공포” 사라진 사람들

“영어가 편치 않은 어르신들 중에는 집 밖에도 안 나오시는 분들이 적지 않아요. 괜히 바깥 출입을 했다가 단속에 휘말려 험한 일을 당할까 봐 두려운 거죠.”

최근 뉴욕의 한 한인 교민단체 관계자는 한인 이민자 밀집 지역의 교회들 중에서는 신도들의 출석률이 떨어진 곳들이 많다며 이렇게 말했다. 합법이든 불법이든 체류 신분을 떠나 광범위한 불안감이 퍼져 있다는 의미였다.

이달 워싱턴포스트(WP) 역시 보스턴 외곽의 아이티계 이민자 교회의 사례를 들어 “신도의 3분의 2가 실종됐다”며 “여러 교회의 목사들이 (신도들의 두려움을 고려해) 예배 시작 후 교회 문을 잠그는 것을 고려 중”이라고 보도했다.

이는 트럼프 행정부가 범죄 경력이 있는 불법 이민자 위주로 단속을 시행하겠다고 하면서도, 동시에 일상적인 단속 과정에서 제대로 신분 증명을 하지 못하는 이들을 발견하면 구금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달 뉴저지주에서는 ICE 요원들이 한 생선 시장을 급습한 일이 보도됐다. 이들은 “이곳에 불법 이민 노동자가 있다는 신고를 받고 왔다”며 영장 없이 현장에 나타났다. 또 단속 과정에서 신분증을 보여주지 못한 이들이 구금됐다. 이 중에는 참전 용사 출신 미국 시민도 포함됐던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 언론들은 “전국에서 ICE 표시를 붙인 차량이나 요원 목격담이 급증하고 있다”며 “사람들이 더욱 두려워하는 건 ICE 표시가 없는 차량에도 요원들이 있다는 것”이라고 전했다. 실제 이민법 전문 변호사들과 아시아계 권리옹호 단체들은 “유사시 대응책을 문의하는 전화가 하루 종일 끊임없이 걸려 온다”고 입을 모았다.

● ‘주차장 수면 금지’ 등 가지각색 조언

13일(현지 시간) 미국 주뉴욕 총영사관은 교민과 유학생 등 사이에 퍼진 과도한 불법 이민자 단속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언론 설명회를 가졌다. 뉴욕=임우선 특파원 imsun@donga.com

13일(현지 시간) 미국 주뉴욕 총영사관은 교민과 유학생 등 사이에 퍼진 과도한 불법 이민자 단속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언론 설명회를 가졌다. 뉴욕=임우선 특파원 imsun@donga.com
이 때문에 요즘 미국의 인기 숏폼 플랫폼인 ‘틱톡’에서는 각종 ‘단속 대비법’이 공유되고 있다. 시민권자임에도 외출 시 여권을 가지고 다닌다는 비(非)백인 미국인들부터 비자 사증 사본 등 신분증명서를 몸에 지니고 다닌다는 유학생들의 인증 영상까지 만일에 대처하는 다양한 노하우가 공유되는 분위기다.

전문가들은 ICE 단속의 ‘표적’이 되는 인구 집단이 결국 ‘유색인종’이란 점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접근이 최신판 인종 차별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이런 현실 속에 개인들은 애초에 신분증 제출 요구를 받을 만한 문제 상황을 만들지 않는 게 중요하다는 조언도 나온다. 신호 위반 등 비교적 가벼운 교통 규칙 위반으로도 신분증 제출을 요구받을 수 있는데, 이때 제대로 된 서류를 보여주지 못하면 난감한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음주 후 식당 주차장에 주차한 차 안에서 잠들었다가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걸리는 것도 적잖이 발생하는 사례 중 하나다.

주뉴욕 한국총영사관 관계자는 “불시검문 형태로 신분증 검사가 이뤄지는 것은 아니지만 경미한 문제 상황에서도 적법한 신분증이 없으면 문제가 될 수 있다”며 “이민 신분을 증명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늘 비자 사증이 붙은 여권을 소지하는 것”이라고 조언했다.

● 학교로 번진 “본 적 없는 두려움”

한편 트럼프 행정부가 불법 이민자 단속의 범위를 학교로 넓힐 수 있다고 밝히면서 미 전역 학교 현장의 혼란과 공포도 커지는 모양새다.

미국은 연방 헌법에 따라 모든 어린이의 교육받을 권리를 보장한다. 공립학교 등록 시 부모나 학생의 이민 신분 확인을 요구하지 않기 때문에 불법 이민자 가정의 어린이더라도 초중고 교육을 받을 수 있다. 미 이민정책연구소는 이런 불법 체류 아동 수를 약 73만3000명으로 추산했다.

이런 상황에서 학교와 현장의 교사들은 학교에 ICE 요원들이 들이닥칠 경우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고심하고 있다. 실제 이달 시카고의 한 공립 초등학교에서는 진입하려는 ICE 요원들을 학교 직원들이 저항하며 막아 되돌려 보냈다는 소문이 퍼져 큰 혼란이 일었다. 추후 이들은 ICE 요원이 아닌 비밀경호국 직원으로 확인됐지만 시카고 교육 당국은 “이는 현재 우리 도시에 존재하는 두려움과 불안이 어느 정도인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평했다.

뉴욕에서는 매일 교사에게 “보건실에 가고 싶어요”라고 말한 초등학교 1학년 학생의 사연이 보도되기도 했다. 알고 보니 이민자의 자녀로서 엄마를 다시 볼 수 없을까 봐 두려워 집에 가려고 그랬다는 것이다. 뉴욕시 교육 당국은 “적법한 영장 없이는 학교에 ICE 요원의 진입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며 “학생들의 이민 신분 또한 공개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 트럼프, 피난처 도시 압박 가속화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달 22일부터 31일까지 열흘간 총 8200명 이상의 불법 이민자를 체포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지금까지 한국인 체포자 수는 한 자릿수인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이 같은 수치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 CNN은 “백악관 내에서 ICE에 대한 실망감이 커지고 있다”며 “ICE에 ‘목표를 달성하라’는 엄청난 압력이 가해지고 있다”고 전했다. 폭스뉴스도 “ICE는 현재 하루 수백 명대인 체포자 수를 최소 1200명 이상으로 늘리라는 윗선의 압박을 받고 있다”며 “뉴욕 ICE 오피스의 일간 체포 할당량은 75명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시카고와 함께 불법 이민자에게 우호적인 대표적 ‘피난처 도시’로 꼽히는 뉴욕의 보호벽을 깨뜨리려는 시도도 이어가는 중이다. 뉴욕주는 주법과 행정명령 등에 의해 ICE가 적법한 영장 없이 법원이나 학교, 병원과 같은 곳에서 이민법 집행을 할 수 없도록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팸 본디 법무장관은 뉴욕에 대한 관련 연방 자금 지원을 끊는 한편, 불법 이민자 우대 관련 제도에 대해 소송을 제기했다. 또 비리 혐의로 뉴욕 검찰에 기소된 에릭 애덤스 뉴욕시장의 기소를 기각하는 대신, 불법 이민자 단속에 협조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이날 애덤스 시장은 맨해튼의 이민자 전용 수용시설이었던 ‘루스벨트 호텔’을 폐쇄하겠다고 밝혔다. 뉴욕시는 코로나19 당시 경영난에 폐쇄된 이 호텔을 이민자들을 위한 임시 숙소로 사용해 왔다. 이로 인해 트럼프 대통령과 그의 오른팔 격인 일론 머스크 정부효율부(DOGE) 수장은 ‘불법 이민자들이 호텔 생활을 한다’고 비판해 왔다. 애덤스 시장은 6월까지 도시 전역의 다른 53개 비상 수용시설도 모두 폐쇄한다는 방침이다.

임우선 뉴욕 특파원 ims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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