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코리안] "한복은 문화 비즈니스…오스카 무대서도 통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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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8회 아카데미 시상식 무대 빛낸 로라 박 '이화 웨딩 앤 한복' 대표

백악관 추석 행사·스미스소니언 미술관서 직접 제작한 한복 선보여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메이저리그 선수들 단체 한복 40벌 제작하기도

이미지 확대 연합뉴스와 인터뷰하는 로라 박 '이화 웨딩 앤 한복' 대표

연합뉴스와 인터뷰하는 로라 박 '이화 웨딩 앤 한복' 대표

(서울=연합뉴스) 박현수 기자 = 지난 13일 한복 전문 매장이 밀집해 있는 서울 종로구 광장시장 인근 카페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하는 로라 박 '이화 웨딩 앤 한복' 대표. '이화'는 한국에서의 그의 이름에서 따왔다. 2026. 4. 13. phyeonsoo@yna.co.kr

(서울=연합뉴스) 박현수 기자 = "한복만을 고집해온 미국 생활 40년, 이제는 '한복'이라는 이름만으로도 통하는 시대가 됐어요. 오스카 무대가 그걸 확실히 보여줬죠."

지난달 15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제98회 아카데미 시상식(오스카)에서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장편 애니메이션상과 주제가상 수상 축하 공연 무대에 오른 한복은 화려한 색채와 전통의 선으로 세계 영화인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 무대 뒤에는 미국 LA에서 40년 넘게 우리 옷을 알려온 재미 한복 디자이너 로라 박(62) '이화 웨딩 앤 한복' 대표의 손길이 있었다.

스미스소니언 미술관 초청 전시, 메이저리그(MLB) 선수들 단체 한복 제작, 백악관 추석 행사 참여까지. 미국 사회 곳곳에서 한복의 존재감을 넓혀온 그를 지난 13일 한복 전문 매장이 밀집해 있는 서울 종로구 광장시장 인근 카페에서 만났다.

박 대표는 이 자리에서 오스카 무대 준비 과정을 상세히 풀어냈다. 공연에는 창(唱)을 부르는 가수 2명과 무용수 3명, 사물놀이 연주자들이 출연했고, 공연 시간은 단 3분에 불과했다.

그는 "3분이 30분처럼 느껴질 만큼 강한 인상을 남긴 무대였다"고 말했다.

이미지 확대 오스카 시상식 후 기념촬영하는 출연진들

오스카 시상식 후 기념촬영하는 출연진들

[로라 박 대표 제공]

의뢰는 철저한 보안 속에서 진행됐다. 할리우드 측은 매장을 여러 차례 방문한 뒤에야 프로젝트의 성격을 공개했다. 박 대표는 "섣불리 외부에 알리지 않는 것이 할리우드의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공연 확정 이후 준비 기간은 15일에 불과했다. 그사이 디자인이 두 차례 바뀌는 우여곡절도 있었지만, 결국 전통 한복의 미를 살리는 방향으로 결론이 났다.

박 대표는 창을 부른 가수 두 명의 한복을 직접 제작하고, 무용수들의 의상에는 원단을 지원하며 오스카 디자인팀과 협업했다. 핵심은 '한복다움'을 살리는 데 있었다.

그는 "끝동과 대비되는 배색을 통해 한눈에 한복으로 보이도록 하는 것이 중요했다"며 "그 방향이 오스카 측의 요구이기도 했고, 내가 지향하는 방식이기도 했다"고 강조했다.

무대가 끝난 뒤 할리우드 디자이너 동료로부터 "역시 네 작품인 줄 알았다"는 전화를 받았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라고 했다.

박 대표의 활동은 오스카 무대에 앞서 미국 사회 곳곳에 발자취를 남겨왔다. 스미스소니언 미술관 요청으로 3년째 추석을 전후해 한복과 도자기 등 한국 전통품을 전시·판매하고 있다.

그는 "전시장이 열리자마자 관람객들이 몰려드는 모습을 보며 한복에 대한 관심을 실감했다"고 말했다.

이미지 확대 스미스소니언 미술관서 한복 등 전시·판매하는 로라 박 대표

스미스소니언 미술관서 한복 등 전시·판매하는 로라 박 대표

[로라 박 대표 제공]

현장에서 만난 외국인 관람객들은 조선의 마지막 황녀 덕혜옹주에 대해 묻는 등 한국 역사에도 깊은 관심을 보였다. 박 대표는 "오히려 나보다 더 잘 아는 분들도 있다"며 웃었다.

2024년에는 백악관 추석 행사에 초청돼 직접 디자인한 한복을 선보이기도 했다. 정치적 색채를 배제하기 위해 딸은 흑백 배색을, 자신은 에메랄드그린 한복을 선택했다. "항상 중립적인 시각에서 디자인하려 한다"는 그의 원칙이 색채 선택에도 반영됐다.

2024년 서울에서 열린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정규시즌 개막전 때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선수들이 LA다저스와의 경기에 앞서 입은 한복 40벌을 제작한 경험도 인상적인 사례다. 구단 측은 선수 이름만 제공했을 뿐, 사이즈 정보는 전달하지 않았다.

박 대표는 선수들의 사진과 공개된 신체 정보를 바탕으로 직접 치수를 추정해 의상을 완성했다. 키 2m가 넘는 선수들의 체형까지 고려한 작업이었지만,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이같은 활약에 힘입어 미국인들 사이에서는 '한복'하면 로라 박을 떠올릴 정도로 그는 이제 '한복의 대명사'가 됐다.

이미지 확대 백악관 추석 행사서 한복 선보인 박 대표 모녀

백악관 추석 행사서 한복 선보인 박 대표 모녀

2024년 백악관 추석 행사에 초청받아 직접 디자인한 한복을 선보인 로라 박(오른쪽) 대표 모녀. 그는 "공화당과 민주당 어느 쪽 색도 연상시키지 않도록 딸은 흑백 배색의 한복을, 저는 에메랄드그린 한복을 입었다"고 말했다. [로라 박 대표 제공]

그의 본격적인 한복 비즈니스는 1990년 LA에서 시작됐다. 외증조부가 평안남도 순천에서 포목상을 시작한 이후 외할머니에 이어 부모가 동대문 일대에서 60년 넘게 도소매업을 이어온 집안에서 성장했다.

스무 살 무렵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4대째 가업을 잇는 디자이너가 됐다.

초기 반응은 냉담했다. "미국에서 한복이 되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 대부분이었다. 실제로 당시에는 한복이라는 단어조차 낯설어 고객들이 "중국 옷이냐, 일본 옷이냐"고 묻기도 했다.

하지만 박 대표는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의식주(衣食住)라는 단어에서 '의(衣)'가 제일 앞에 오는 데는 이유가 있다. 옷은 가장 멀리서도 그 사람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한복은 우리 문화가 있는 한 없어질 수 없다. 한복 비즈니스가 아닌 문화 비즈니스를 한다는 생각으로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미지 확대 MLB 서울 개막전 때 박 대표가 제작한 한복을 입은 김하성 선수

MLB 서울 개막전 때 박 대표가 제작한 한복을 입은 김하성 선수

2024년 서울에서 열린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정규시즌 개막전 때 김하성 선수가 소속한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선수들이 단체로 입었던 한복도 로라 박 대표가 제작한 것이다. [유튜브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그의 확신은 적중했다. 이민 역사가 100년을 넘어서며 한인 2·3세들이 다문화 가정을 이루고, 한류 열풍이 K팝과 K드라마를 넘어 K패션으로 번지면서 수요가 급격히 늘었다.

현재 박 대표의 고객 중 95%가 외국인이다. 예전에는 결혼식이나 특별 행사에 한정됐던 수요가 이제는 학교 행사, 한인의 날 행사, BTS 공연 관람 등으로 다양해졌다.

고객이 유입되는 경로도 달라졌다. 그는 "요즘은 챗GPT가 추천해서 왔다는 고객들도 있어 놀랐다"고 말했다.

한복을 부르는 방식도 변화했다. 과거에는 '한국 전통 의상'으로 설명해야 했지만, 이제는 'hanbok'이라는 단어만으로도 충분히 통용된다.

이미지 확대 훈민정음을 원단에 새긴 의상을 입은 로라 박 대표

훈민정음을 원단에 새긴 의상을 입은 로라 박 대표

로라 박 대표가 훈민정음을 원단에 새기는 것은 착용자가 자연스럽게 한국 문화를 설명하는 역할을 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로라 박 대표 제공]

박 대표는 모든 의상에 의미를 담는다는 원칙을 지켜왔다. 훈민정음을 원단에 새기는 것도 그 일환이다. 착용자가 자연스럽게 한국 문화를 설명하는 역할을 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의미를 담는 원칙은 색채에도 이어진다. 그는 "배색에 따라 완전히 다른 옷이 된다"며 "색감의 배합, 그 대비가 한복을 한복답게 만드는 힘"이라고 했다.

전통과 변화의 균형에 대한 생각도 분명하다. 그는 "전통 요소는 유지하되, 현대적인 핏을 더해야 지속 가능하다"며 "그 균형이 한복을 세계 속에서 살아남게 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40년의 세월을 돌아보는 그의 눈빛에는 설렘이 묻어 있었다. "저를 찾아주는 분들이 다음에는 어떤 곳에서 연락이 올까 매 순간 기대가 된다"며 "늘 겸손하게 배우면서 후학들을 가르치고 싶다"고 말했다.

phyeonsoo@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026년04월28일 06시00분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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