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국산도 나오는 모양이라며 살펴봤는데 뭔가 좀 달랐다. 미국산이나 이탈리아산은 뿌연데 국산은 맑았다. 짚이는 게 있어 성분표를 읽어 보니 국산은 사과주스농축액을, 지명도 있는 두 해외 제품은 사과즙을 발효시켜 만들었다. 후자는 보통 여과 및 살균 과정을 거치지 않으므로 뿌옇고 다소 쿰쿰할 수 있지만 사과의 맛과 향을 더 복합적으로 잘 살려준다. 그야말로 훨씬 더 자연스럽다.
먹어 봐야 맛을 안다고, 집에 종류별로 대여섯 개 넘게 있는 식초를 두고 국산을 사서 맛보았다. 예상대로 맛의 표정과 깊이 면에서 기존 해외 제품에 비해 더 나은 구석이 없었다. 표정이 단조로워 해외 제품의 모사품 같은데도 가격은 훨씬 더 높았다. 국산 신제품이 온라인 쇼핑 기준 100mL당 2130원 수준이라면 해외 제품은 1360∼1470원 수준이었다. 더 좋은 제품이라 볼 수 없는데도 해외 제품보다 45%가량 비쌌다.
더 흥미로운 점은 국산 신제품의 원료가 외국산이라는 사실이다. 튀르키예산 사과주스농축액을 써 생산만 국내에서 했다. 말하자면 기존 미국산이나 이탈리아산과 국산 신제품은 미묘하게 다른 제품이며, 우열을 가리자면 분명 외국산이 낫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은 ‘애플사이다비니거’라는 명칭을 달고 마트 선반에 나란히 서서 소비자의 선택을 기다린다.나는 음식을 평론하는 직업인이며 두 제품의 본질적인 차이를 알기에 단지 국산이라는 이유만으로 이 식초를 덥석 집어 들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대다수의 사정은 다르다. 먹고살기 바쁜 세상, 식초까지 꼼꼼하게 깨알 같은 글씨의 성분표를 대조해 가며 고르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많은 이들이 믿을 만한 국내 대기업 제품이라는 이유로 이 식초를 더 비싸게 살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게 문제냐고 묻는다면 글쎄, 식초 하나만 본다면 대수롭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큰 그림을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식품 대기업 상당수가 1945년 광복 이후 적산의 획득으로 기반을 잡고 산업화를 통해 급성장해 실질적인 독과점을 누려 왔다. 그 결과 우리는 소비자의 필요나 기호를 속속들이 반영한 제품을 쓴다고 말할 수 없는 현실을 산다. 좀 더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기업이 내놓는 대로 쓰면서 선택은 자주적으로 한다고 착각한다.
이 농축액 애플사이다비니거를 내놓은 기업은 최근 밀가루, 설탕 가격 담합 의혹으로 공정거래위원회의 심판대에 올랐다. ‘거대한 손’이 우리의 식탁 및 선택의 권리를 쥐락펴락하고 있지만 이 모든 현실을 파악하고 소비하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자신을 위해 조금만 더 눈과 귀를 열어둘 필요는 있다. 그래야 무엇이 더 나은지 골라내고, 더 나을 것 없는 식료품을 비싸게 사서 쓰지 않을 수 있다.이용재 음식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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