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하정민]하메네이 아들 모즈타바 vs 호메이니 손자 하산

6 hours ago 1

하정민 국제부 차장

하정민 국제부 차장
632년 이슬람의 창시자 무함마드가 숨졌다. 전쟁을 방불케 하는 후계자 분쟁이 발발했다. 시아파는 “무함마드의 피가 섞인 사람만이 후계자가 될 수 있다”며 그의 사촌 동생 겸 사위 알리를 추대했다. 수니파는 무함마드의 후원자인 부호 아부 바크르를 내세웠다.

‘정통성’에서 앞섰으나 ‘영향력’이 뒤진 알리는 수니파 극단 세력에게 살해당했다. 시아파는 이 죽음을 순교로 여긴다. 즉, ‘혈통’과 ‘순교 서사’는 시아파의 상징이다.

지난달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숨진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의 차남 모즈타바가 8일 새 최고지도자로 뽑혔다. 강경보수 성향인 모즈타바가 선출된 것은 외부의 적에 대한 결사항전의 의미가 크나 ‘피’를 중시하는 시아파의 특성도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모즈타바는 이번 공습으로 부친, 모친, 아내, 여자 형제, 조카 등을 모두 잃었다. 이란 강경파엔 이 또한 순교 서사다.

모즈타바가 언제까지 권력을 유지할지는 모른다. 다만 하메네이 제거에 미국보다 더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진 이스라엘은 모즈타바 또한 축출하겠다고 벼른다. 이에 이번에는 권력을 잡지 못했지만 언제든 권력 중심부에 접근할 수 있는 또 다른 혁명 원로의 후손 하산 호메이니도 주목받고 있다. 하산은 1979년 이슬람 혁명을 성공시켜 신정일치 체제를 확립한 초대 최고지도자 루홀라 호메이니의 손자다. 모즈타바의 후계자 확정 전 로이터통신 등은 하산도 유력한 차기 지도자로 꼽았다.

하산의 장점은 조부와 본인 모두 드러난 과오가 별로 없다는 것이다. 호메이니는 혁명 후 10년간 집권하다 자연사했다. 장기 집권했다면 그 또한 하메네이처럼 반대파를 잔혹하게 탄압했을지 모르나 어쨌든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당시엔 인터넷과 소셜미디어도 없었다. 혁명을 경험하지 못한 이란 젊은 층에게 호메이니는 ‘영향력은 막대하나 나와는 큰 연관이 없는 역사 속 인물’이다.

호메이니 사후 37년간 집권한 하메네이는 다르다. 그의 반대파 탄압은 2002년 핵 개발 의혹이 불거진 후 본격화했다. 서방의 핵 제재로 경제난이 가중되는데 하메네이는 시아파의 영향력 확대와 군사력 증강에만 골몰했다. 그런데도 유류세 인상 반대, 히잡 의문사 등으로 반정부 시위가 발발할 때마다 총칼로 틀어막았다. 그 과정 또한 전 세계로 생중계됐다. 부친을 도와 유혈 진압을 주도한 모즈타바에 대한 불만 또한 언제든 터져 나올 수 있다.

하메네이는 생전 호메이니의 무덤을 참배할 때마다 하산을 대동했다. 호메이니의 후광을 통해 집권 정당성을 조금이라도 강화하려는 시도였을 것이다. 하산은 여성 인권 등을 중시하는 성직자로 알려져 있다. 2009년 대선에서 부정선거로 재선에 성공했다는 의혹을 받는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전 대통령을 비판한 적도 있다. 훗날 하산이 권력을 잡을 수 있을지, 잡게 된다면 지금 같은 개혁 성향을 유지할지 알 수 없다. 다만 모즈타바의 권력 세습, 지도자 물망에 오르내리는 하산의 사례는 이란 이슬람 혁명의 정당성이 얼마나 취약한지도 알려준다. 세습 반대는 그저 군주제를 무너뜨리기 위한 도구였음을 혁명세력 본인들이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광화문에서 >

구독

이런 구독물도 추천합니다!

  • 염복규의 경성, 서울의 기원

    염복규의 경성, 서울의 기원

  • 이창수의 영어&뉴스 따라잡기

    이창수의 영어&뉴스 따라잡기

  • K-TECH 글로벌 리더스

    K-TECH 글로벌 리더스

하정민 국제부 차장 dew@donga.com

© dongA.com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Read Entire Arti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