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조종엽]찬탄이든 반탄이든 같은 배를 타고 있다

1 month ago 8

조종엽 문화부 차장

조종엽 문화부 차장
윤석열 대통령은 ‘가치관 형성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책’으로 미국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1912∼2006)의 ‘선택할 자유(Free to Choose·1980년)’를 여러 차례 꼽았다. 고전적 자유주의의 부활을 주장한 책으로, 일각에선 ‘대통령이 시장 만능주의에 경도된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낳기도 했다. 대통령과 나라의 운명이 걸린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선고를 목전에 둔 가운데, 프리드먼이 이 책 맨 앞에 인용한 한 논고 구절이 눈길을 끈다.

“정부의 목적이 유익할 때 자유를 보호하기 위해 최대한 경계해야 한다는 걸 경험은 우리에게 가르쳐 준다. 자유롭게 태어난 사람들은 악의를 가진 통치자들이 자유를 침해하는 걸 본능적으로 경계한다. 진짜 위험은 열정적이고 선의를 가졌지만 분별이 없는(without understanding)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자유를 침식하는 데 도사리고 있다.”

프리드먼은 정부 정책의 의도가 좋더라도 국민의 자유를 침해하면 오히려 나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이 구절을 인용했을 것이다. 원래 이 글을 쓴 이는 미국에서 ‘국민들의 변호사’로 불린 루이스 브랜다이스 대법관(1856∼1941)이다. 1928년 정부의 사생활 침해에 맞서 프라이버시권의 보장을 역설하며 썼다.

브랜다이스는 경찰이 밀매업자를 감청한 건 부당하다, 범죄자 검거라는 ‘목적’이 불법 도청이라는 ‘수단’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무법자가 되면 시민들도 그럴 테고, 세상이 무법천지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이 짧은 인용구를 얼마나 곱씹어가며 읽었을지는 알 도리가 없다.

12·3 비상계엄이 ‘악의를 가진 통치자’의 자유 침해인지, ‘선의를 가진’ 침식 시도인지 따지고 싶은 생각은 없다. 중요한 건 자유를 지키기 위해선 열정만큼이나 ‘분별 있는 시민’들의 존재가 필수라는 데 있다.

누적된 정치 갈등과 세 대결로 광장은 찬탄과 반탄으로 갈린 채 일촉즉발 상황이다. 헌재에서 원하는 판결이 나오지 않을 경우 불복할 것을 부추기는 정치인들 탓이 크다. 결정이 발표되면 어느 한쪽은 그동안의 믿음이 무너지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럴 때 인간은 분노를 느끼고, 분노는 쉽사리 상대를 향한 증오로 바뀐다. 다수가 그런 감정에 몸을 맡겼다간 우리가 간신히 만들고 지켜 온 민주주의가 일거에 무너질 소지마저 없지 않다.

새삼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 소감을 생각해 본다. 그는 어릴 적 비를 피하다 “내 곁에 어깨를 나란히 하고 서 있는 이 사람들 모두, 그리고 건너편의 사람들 모두, 저마다의 방식으로 ‘나’로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문득 깨달았다”고 했다. “수많은 1인칭 시점의 존재를 경험한 놀라운 순간이었다”는 것이다. 의견이 달라도 우리는 어차피 대한민국이라는 같은 배를 타고 있다. ‘1인칭 시점’까진 무리라고 해도, 최소한 찬탄을 외치는 사람이나 반탄을 외치는 사람이나 서로 조타실을 빼앗으려다 배가 침몰하면 모두 치명적인 피해를 볼 뿐이라는 인식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적어도 힘으로 상대의 의견을 억압하려 해선 안 된다. 이해와 납득, 그리고 분별. ‘언더스탠딩(understanding)’이 갈등을 딛고 우리 사회를 회복시켜 미래로 이끌 열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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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종엽 문화부 차장 jj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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