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잡 설계사 열풍은 취업난의 그늘을 보여준다. 구직자든 취업자든 ‘일단 푼돈이라도 벌 기회를 잡자’는 마음일 것이다. 아직 고용시장에 진입조차 하지 못한 이들에겐 이런 기회도 소중한 일 경험이다. 달리 보면 근무 시간과 형태가 다양한 일자리에 대한 수요가 얼마나 큰지를 보여준다.
신입 직원이 인공지능(AI)으로 대체되는 흐름에 부업이나 탄력적 일자리를 원하는 수요는 더욱 폭발할 것이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지난달 비교적 경력이 있는 30대의 고용률은 80%대를 유지했지만, 경력이 부족한 15∼29세 청년층은 4년간 고용률이 내림세였다. 이런 현상은 더욱 뚜렷해질 조짐이다. 세계경제포럼(WEF)이 발간한 ‘미래 일자리 보고서 2025’ 설문조사에 따르면 고용주의 40%가량이 ‘AI가 자동화할 수 있는 업무에서 인력을 감축할 예정’이라고 답했다. 이러다가 신입 직원 멸종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고용시장의 문턱조차 넘지 못한 이들이 일자리를 가지려면 기업들의 인건비 부담이 낮아야 한다. 일의 형태와 근무 시간을 다양하게 설계하면 기업이 인건비를 절약하며 청년을 고용할 수 있다. 장기 인턴십 대신 1∼4주 단위로 프로젝트형 단기 인턴십을 시도해 볼 필요가 있다.독일에서 실업자를 노동시장으로 끌어들이려 제도화한 ‘미니잡’, ‘미디잡’을 참고해 볼 만하다. 미니잡은 저임금 파트타임 일자리로, 근로자는 사회보험료를 거의 안 내도 된다. 미디잡은 이보다 임금이 많은 대신 소득 수준에 따라 보험료를 적게 낼 수 있다. 2002∼2005년 당시 독일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가 추진한 하르츠 개혁의 일환으로 생겨났다. 2000년대 초반 10%를 넘던 실업률을 2015년 5% 밑으로 끌어내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독일과 스위스, 프랑스 등에서 활성화된 일-학습 병행제는 일주일에 일부는 근무하고 나머지는 신기술을 배우는 방식이다. 기업이 구직자를 미리 경력직처럼 훈련시킬 수 있는 방법이다. 국내에서도 시도되고 있지만, 양질의 일자리와 연계해 더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
단기 프로젝트성 일자리나 탄력적 근무제는 효과적인 저출산 극복 수단도 된다. 아이를 키우는 직원들은 돈만큼이나 시간 배분이 중요하다. 저출산 문제를 먼저 넘긴 유럽의 복지 국가들은 탄력적이고 선택적인 근로시간 제도를 해법으로 꼽고 있다. 일하는 방식과 시간을 재설계하는 개혁은 신기술의 속도만큼이나 혁명적이어야 한다. 낡은 근무 제도의 틀에 안주하다 놓쳐 버리는 인적, 사회적 자원의 손실을 빨리 막아야 할 때다.조은아 경제부 차장 ac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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