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임현석]AI가 쓴 소설 독자는 알아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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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현석 디지털랩 전략영상팀장

임현석 디지털랩 전략영상팀장
글로벌 대형 출판사 아셰트가 영국에서 출간된 소설 ‘샤이걸’을 이달 19일 서점에서 거둬들였다. 이 책은 이달 미국에도 출간될 예정이었지만 계획이 취소됐다. 작가가 인공지능(AI)으로 소설을 썼다는 의혹이 불거졌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번 사태를 두고 “대형 출판사가 AI 사용을 이유로 소설 판매를 중단한 최초 사례”로 평가했다. 독자와 출판사가 AI 창작물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보여주는 첫 공개적 사례라는 의미도 있다.

AI 의혹을 제기한 건 독자들이다. 올해 초 온라인 커뮤니티인 레딧과 유튜브 독서 리뷰 채널에서 묘한 위화감이 든다는 반응이 나왔다. 개별 단어나 문장은 그럴싸하지만,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기이할 정도로 모든 문장과 표현이 균질하다는 것이다.

AI가 쓴 글에는 공통된 패턴이 있다. AI는 수백만 편의 글을 학습해 ‘소설적인 것’의 평균을 뽑아 배열한다. 연구자들은 이를 두고 AI가 “구체적이고 특이한 사실은 통계적으로 드물기 때문에 생략하고, 더 일반적인 표현으로 대체한다”고 설명한다. AI는 분위기를 잡고 싶을 때 통계적으로 흔한 빛, 어둠, 침묵 같은 단어에 기대는 경향이 있다.

해당 소설 리뷰에 따르면 214쪽 책에선 ‘침묵(silence)’이라는 단어가 61번, ‘날카로운(sharp)’은 159번 등장한다. 남자의 웃음소리나 목소리도, 공기도, 고통도, 침묵도 모두 날카롭다고 묘사된다.

또 AI는 감정을 내밀하게 묘사하는 대신 “갈비뼈가 조여든다” 같은 물리적 반응을 반복하는 특성도 보인다. 그 자체만 놓고 보면 문제없는 표현이다. 하지만 공포감을 느껴야 할 상황에서 설명만 단조롭게 이어진다면 기이하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문장의 리듬도 마찬가지다. 어떤 독자는 “마치 같은 크기 벽돌로 쌓아 올린 건물을 보는 느낌”이라며 문장이 주어와 서술어가 결합한 안정된 구조에 단어 수도 비슷하게 구성돼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AI가 추구하는 안정성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길이가 다 같은 벽돌로만 짓는 소설은 없다.

작가는 소설에 AI가 쓰인 사실은 일부 인정했다. 지난해 2월 해당 소설을 자가출판했는데 당시 교정·교열 업무를 맡은 프리랜서 편집자가 AI를 썼다는 것이다. 출판사라고 몰랐을까? 자가출판 때 이미 흥행한 스릴러였기 때문에 출판사가 막상 정식 발간 전 검증엔 소홀했다는 눈총을 받고 있다. 이런 와중에 AI 사용 자체는 문제가 아니라는 의견도 적잖다. 어떤 이는 “이탈리아 르네상스 대표 화가 미켈란젤로도 많은 조수를 두고 일했다”고 지적한다. 작가가 AI를 감독하면서 썼다면 문제가 안 된다는 주장이다. 출판계에선 창작에서 AI를 전면 제한해야 하는지, 공동 작업을 인정한다면 어느 수준까지가 가능한 것인지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해외에선 몇 가지 기준점이 추려지는 분위기다. 중요한 건 AI를 현저히 썼다면 그 사실을 밝혀야 한다는 투명성 요구다. 독자는 AI 시대에도 창작자와의 교감을 중시한다. AI를 어디까지 사용해도 좋은지 논의가 필요하지만 그 핵심에는 독자와 창작자 간의 신뢰가 자리 잡아야 한다는 점 또한 틀림없다. 신뢰가 원칙이다. 그에 관해서라면, 세상이 변한 것은 없다. lhs@donga.com

임현석 디지털랩 전략영상팀장 lh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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