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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이은택]‘윤권위’가 돼버린 인권위… 역사는 잊고 오늘만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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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택 사회부 차장

이은택 사회부 차장
안창호 국가인권위원장을 처음 주목한 건 인권위원장 후보자 때였다. 그가 헌법재판소 재판관을 지낸 뒤 변호사로 활동하던 시절 미성년자 성매매 및 성관계 여성 ‘몰카’를 저지른 기업 2세를 변호했다는 걸 알고 나서다. 누구나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있지만, 변호인은 자신이 누굴 변호할지 선택할 수 있다. 대통령까지 파면할 수 있는 헌재 재판관을 지낸 인물이 부유한 파렴치범 변호를 자처한 건 곱게 보이지 않았다.

거기에 서울 강남구 아파트를 장남에게 ‘매매’로 넘겼다는 사실도 있었다. 증여세 회피, 장남의 매수자금 형성 등을 둘러싼 의혹을 안 위원장은 “장남의 추억이 있는 집”이라는 말로 덮었다. 그의 행적은 인권, 정의보다는 부(富)와 재물에 진심이었다.

국가인권위원장이라는 직함에 다소 어울리지 않는 인물이라는 개인적 우려는 12·3 비상계엄을 거치며 현실이 됐다. 이달 10일 인권위는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심판 방어권 보장 권고를 의결했다. 안건 명칭은 ‘계엄 선포로 야기된 국가적 위기 극복 대책 권고의 건’이었지만, 골자는 헌재가 탄핵심판을 조속히 각하하고, 윤 대통령을 석방하란 것이다. ‘대통령의 위기’를 ‘국가의 위기’로 간주한 것. 절대왕정 시대나 통했던 “짐이 곧 국가다”와 비슷한 발상이었다. 인권위 전원위원회에 참석한 위원 10명 중 안 위원장과 이충상, 김용권 등 6명이 찬성표로 통과시켰다. 18일에는 구속 기소된 박안수 전 육군참모총장, 여인영 전 방첩사령관 등 계엄군 수뇌부를 신속히 보석하라고 권고했다. 입법권을 잃을 뻔했던 국회, 1980년 광주로 되돌아갈 뻔했던 국민은 인권위의 관심사 밖이었다. 인권위가 보호하는 ‘인(人)’에는 계엄군 수뇌부와 윤 대통령밖에 보이지 않았다. 혹자는 국가윤(尹)권위원회가 됐다고 자조한다.

내년에는 세계국가인권기구연합(GANHRI) 승인소위원회의 각국 인권기관 등급 심사가 있다. 118개 회원기구로 구성된 이 연합의 심사는 5년마다 하는데 2021년 우리 인권위는 A 등급을 받았다. 헌법과 법률에 보장된 인권기구의 독립성, 구성원의 다양성, 업무의 독립성 등이 평가 기준이다. 2001년 출범 이래 인권위가 지금까지 A 등급을 못 받은 적은 없었다. 박근혜 정부에서도 등급 결정이 연기된 적은 있었지만 결국은 A 등급을 받았다.

하지만 내년에는 결과를 장담할 수 없다는 말이 나온다. 세계 외신이 대한민국 국회를 밀고 들어가는 계엄군과 이를 지시한 혐의로 구속된 대통령을 목격했는데, 그 대통령이 임명한 인권위원장은 대통령 구하기에 혈안이다. 대통령을 파면해야 한다는 여론이 50%를 넘고 인권위 직원들도 이건 아니라며 들고일어났지만 안 위원장과 측근들은 아랑곳 않는다.

평생 독립운동에 헌신하고 학생들을 지키려 총장직까지 내던졌던 김준엽 전 고려대 총장(1920∼2011)은 생전 “현실에 살지 말고 역사에 살아라. 정의와 진리와 선은 반드시 승리한다”는 어록을 남겼다. 최근 인권위 내부 게시판에 누군가 이를 인용했다. 그런데 안창호표 인권위는 반대로 가고 있다. 역사는 나 몰라라, 오늘만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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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택 사회부 차장 nab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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