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박선희]우울과 불행에 힘겨운 한국… 심리 치료도 국가가 나서야

1 month ago 3

박선희 문화부 차장

박선희 문화부 차장
비슷한 비극이 계속 반복되고 있는 이유는 뭘까.

올해 들어서만 대중의 사랑을 받던 유명인들이 연이어 스스로 생을 마쳤다. 각지에서 극단적 선택을 한 일가족의 소식이 몇 주 시차를 두고 계속 전해진다. 안타까운 뉴스를 접할 때마다 떠올린 저 질문을 이제는 바꿔야 할 시점임을 느낀다. ‘우리 사회가 비슷한 비극을 계속 방치하고 있는 이유는 대체 뭘까.’

매년 이맘때가 되면 한국인의 행복 상태를 보여주는 성적표가 몇 가지 날아온다. 통계청은 지난달 ‘국민 삶의 질 2024’ 보고서를 내놨다. 2023년 한국인 삶의 만족도는 6.4점으로 전년보다 0.1점 떨어졌다. 반면 인구 10만 명당 자살률은 27.3명으로 9년 만에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자살률은 하락하고 있는데, 한국만 나 홀로 상승 중이다. 20년 넘게 이어지는 곤혹스러운 추세다.

이달에는 세계행복보고서(WHR)가 발표하는 각국의 행복 순위도 공개됐다. 2025년 국가별 행복 순위에서 한국은 147개국 중 58위로 지난해보다 6계단 하락했다. 역시 OECD 기준으로 보면 최하위 수준이다.

이처럼 삶의 만족도 저하와 비정상적 자살률이 계속되고 있음에도, 정신 건강에 대한 한국 사회의 대처는 여전히 너무나 안이하다. 전문가들 사이에서 이 정도면 “공중보건의 비상사태”라는 진단이 나오는데도 전향적인 대책을 찾아볼 수 없다.

선진국들은 이 문제에 기민하게 대응하고 있다. 지난달 국내 출간된 책 ‘심리 치료는 왜 경제적으로 옳은가’에 따르면 영국은 공적 의료 제도인 ‘심리 치료 접근성 향상 서비스’(IAPT)를 이미 2008년부터 도입해 시행 중이다. 우울증, 불안장애 같은 정신 문제를 겪는 사람들에게 국가가 인지행동치료(CBT)에 기반을 둔 무료 심리 치료나 상담 서비스를 제공하는 제도다.

국가가 직접 심리 치료에 나선 이유는 마음의 병을 방치했다가 뒤늦게 치러야 하는 사회적 대가가 초창기 치료비와는 비교할 수 없이 크다고 봤기 때문이다. 시행 5년 만에 40만 명이 혜택을 봤고, 절반 이상의 건강이 호전됐다. 소득, 학업 성취, 고용률까지 올랐다. 2018년에는 우울과 고독감 등을 국가적 차원에서 다루겠다며 세계 최초로 ‘외로움부(Ministry of Loneliness)’를 신설하기도 했다. 개인적 문제로만 치부했던 심리 문제를 국가가 공적 영역에서 적극적으로 다룰 필요가 있다는 제언은 우리 사회가 특히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다. 한국은 지난해에야 영국식 모델을 본떠 ‘전 국민 마음투자 지원사업’을 시작했지만 겨우 걸음마를 뗀 수준이다.

‘외로움부’를 도입한 영국의 자살률(2021년 기준)은 인구 10만 명당 8.4명으로 OECD 평균(10.6)보다 낮다. 전담 부처를 신설해서라도 심리 문제의 공적·국가적 개입이 시급한 나라가 있다면, ‘자살률 1위’ 오명을 못 벗는 한국만큼 급한 나라가 없다. 이제라도 선진국의 사례를 참고해 비극의 악순환을 끊을 제대로 된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광화문에서 >

구독

이런 구독물도 추천합니다!

  • 오늘의 운세

    오늘의 운세

  • 데스크가 만난 사람

    데스크가 만난 사람

  • 부동산 빨간펜

    부동산 빨간펜

박선희 문화부 차장 teller@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Read Entire Arti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