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속 노화란 건강하게 생활하며 천천히 나이 드는 걸 일컫는다. 근래 책, 영상을 불문하고 가장 인기 있는 콘텐츠 소재이기도 하다. 그중에서도 생활 속에서 쉽게 적용할 수 있는 저속 노화 식단법을 찾는 이가 많아졌다. 지중해식, 디톡스 등의 명칭으로 불렸던 건강식의 또 다른 지류인 셈인데, 노화를 가속시키는 혈당 스파이크를 막기 위한 관리법, 세포 손상을 방지하는 항산화 식품 섭취 등을 강조한다.
서점가에서 저속 노화가 본격적으로 인기를 끈 건 지난해부터였다. 정희원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교수의 ‘저속노화 식사법’이 베스트셀러가 된 뒤로 같은 키워드를 담은 책들이 지속적으로 출간되고 있다. 야근과 과로, 유행병 같은 다양한 스트레스와 배달·가공식품 노출로 ‘가속 노화’ 페달을 밟고 있는 현대인의 몸을 지키자는 취지다.
채널A도 지난달 28일부터 배우 신애라가 힐링이 필요한 게스트를 초청해 저속 노화 테라피를 제공하는 ‘테라피 하우스 애라원’을 새롭게 선보였다. 저속 노화란 테마가 얼마나 인기 있는 화두가 됐는지를 보여 준다. 노화의 징후에 당면한 장년층뿐 아니라 자기관리에 철저한 2030세대가 이 트렌드를 이끄는 또 다른 주축이란 점도 흥미롭다.저속 노화는 한때 유행했던 ‘안티에이징(Anti-aging)’과는 차이가 있다. 식품·뷰티 등 산업 전방위에서 이 용어를 마케팅에 활용했지만, 이제는 해외에서도 저속 노화의 개념을 담은 ‘슬로 에이징(Slow Aging)’이 일반화되고 있다. 노화에 대한 거부감이 강했던 안티에이징과 달리 슬로 에이징은 나이 듦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먹고 운동하는 방식뿐 아니라 마음챙김, 명상 등을 통해 나이를 떠나 자기 효능감과 내재 역량을 높인다.
한 가지 아쉬운 건, 저속 노화 열풍이 뜨겁지만 우리 사회에선 여전히 행복하게 나이 들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연령으로 능력, 태도를 판단하는 연령주의(ageism)로 인해 고령층은 양질의 일자리를 유지하기 어렵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3년 기준 65세 이상 노인 10명 중 4명이 빈곤층이다. 노인 비하나 혐오도 만연하다. ‘2024 세계행복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60세 이상 노인의 행복도(59위)가 30세 이하 청년 행복도(52위)에 비해 떨어지는 나라다. 일본, 미국의 경우 노인의 순위가 청년보다 훨씬 높았다.
노화를 지혜롭게 수용하자는 측면에서 저속 노화 트렌드는 반갑다. 우리나라의 고령화 속도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저속 노화에 대한 열띤 관심이 보여 주듯 ‘어떻게 나이 들 것인가’는 세대를 떠나 모두가 관심을 기울이는 주제가 됐다. 하지만 행복한 노년을 뒷받침할 장치가 부실한 사회에서의 저속 노화는 젊음에 대한 집착이나 노화 혐오 수준에 머물던 과거 유행의 되풀이일 뿐임을 유념해야 한다.
박선희 문화부 차장 tell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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