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가 지난달 ‘잠삼대청’(잠실·삼성·대치·청담)을 토지거래허가구역에서 섣불리 해제하면서 집값이 치솟은 게 아니냐고 할 수 있겠지만, 서초구는 애초에 허가구역도 아니었다. 거래 시점 역시 서울시가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구)와 용산구를 허가구역으로 묶겠다고 발표하기 이전이었다. 토지거래허가구역 변수로 설명하지 못한 급등 요인이 있다는 뜻이다.
래미안 원베일리에선 지난해 12월에도 전용면적 133㎡가 3.3㎡당 2억 원 넘는 가격에 팔렸다. 당시는 대출 규제와 탄핵 정국으로 아파트 매수 심리가 꽁꽁 얼어붙은 때였다. ‘평당 2억 원’ 아파트 거래가 잇따르는 건 강남의 ‘똘똘한 아파트’에 눈독을 들이는 현금 부자가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서울시가 이를 무시하고 지난달 토지거래허가구역을 해제하자 강남 집값은 기다렸다는 듯이 급등했다. 화들짝 놀란 서울시가 해제 35일 만에 강남 3구와 용산구로 허가구역을 확대하기로 하면서 급한 불은 껐지만, 똘똘한 아파트를 찾는 수요는 여전히 남아 있다. 근본 대책 없이 허가구역을 풀었다간 다시 강남 집값이 달아오를 수밖에 없다.강남권 아파트 수요는 투자와 실수요 측면에서 합리적 선택에 가깝다. 집값 차이는 자산 격차로 이어지는 데다 일자리 교통 교육 등 정주 요건도 강남이 월등하기 때문이다. 특히 ‘교육을 생각하면 강남밖에 답이 없다’고들 한다. 2020년대 이후 서울에서도 학생 수 감소로 학교 6곳이 문을 닫았다. 개교 100년이 넘는 종로구의 동성중·고는 송파구 이전을 추진한다고 한다. 학원 강사로 일하는 지인은 “10여 년 전만 해도 대치동, 목동, 중계동 학원가 차이가 크지 않았는데 지금은 학원가 규모와 강의의 질 모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벌어졌다”고 했다. 전체 학생 수는 줄고 있는데 강남 3구 초중학생은 2021년 1268명 증가했다. 2023년엔 3000명이 늘었다.
이런 현실을 무시하고 똘똘한 한 채로 갈아타려는 수요를 투기로만 보면 수요를 옥죄는 규제만 남발하게 된다. 서울시는 시장 과열이 지속되면 9월 말까지인 토지거래허가구역 규제 기간을 연장하겠다고 예고했다. 규제를 풀었다가 다시 묶는 정책 실패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주택 공급을 늘리는 동시에 강남의 똘똘한 아파트로 몰리는 수요를 분산시킬 유인책부터 마련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규제를 풀 때마다 억눌린 수요가 용수철처럼 튀어 오를 수밖에 없다.
래미안 원베일리가 2021년 역대 최고인 3.3㎡(평)당 5653만 원에 분양했을 때 고분양가 논란이 거셌다. 당시 분양가 결정 과정에 참여한 한 전문가는 기자에게 “땅값이 얼마인지 아느냐”며 “절대 비싼 게 아니다”라고 강변했다. 서울과 강남권 외에도 “이 정도면 절대 비싼 게 아니다”라고 할 만큼 살기 좋은 도시와 동네는 얼마나 될까. 서울시와 정부는 집값 급등을 투기나 규제 탓으로 돌리기 전에 거주 환경 격차를 줄이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반성부터 해야 한다.김호경 산업2부 차장 kimh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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