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이변이 일어났다." 지난 2월 28일 대한체육회 대의원총회가 열린 서울 올림픽파크텔은 충격과 흥분의 도가니였습니다. 2036 하계올림픽 유치 국내 후보 도시 투표에서 '다윗' 전라북도가 '골리앗' 서울시를 물리쳤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49표 대 11표라는 압도적인 승리였습니다. 이런 결과를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투표 결과가 발표되자 오세훈 서울시장이 '이게 뭐지?'라며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인 반면 전라북도 캠프는 김관영 지사를 비롯해 일제히 기쁨의 함성을 내질렀습니다. 전북이 대반전을 연출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일까요? 전북은 나아가 본선에서도 더 큰 기적을 창조하며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 48년 만에 하계올림픽을 대한민국에 선사할 수 있을까요?
절박했던 전북, 방심했던 서울
서울시의 승리는 일찌감치 기정사실처럼 보였습니다. 오세훈 시장이 몇 년 전부터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을 여러 차례 만나는 등 공을 들였고 1988년 서울올림픽 성공 개최 경험과 흑자·친환경 올림픽을 대대적으로 홍보했기 때문입니다. 이와 대조적으로 전북은 지난해 11월에야 뒤늦게 유치전에 뛰어들었습니다. 국제적 지명도와 인프라 등 종합적인 평가에서 전북은 서울의 상대가 되지 못했습니다. 새만금 잼버리의 파행이란 아픈 기억도 감점 요인이었습니다.
하지만 전북은 '절박'한 마음으로 몸을 던졌습니다. 지난해 말부터 투표권을 갖고 있는 대한체육회 올림픽 종목 단체 대의원들의 여론 흐름을 주시하며 대반전을 모색했습니다. 특히 김관영 지사와 2024 파리올림픽 대한민국 선수단장을 역임했던 정강선 전북 체육회장이 대의원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올림픽 유치 필요성을 적극적으로 호소했습니다. 간절했던 전북과 달리 승리를 확신했던 서울은 막판에 방심했습니다. 투표 당일 김관영 지사는 개량 한복을 입은 채 몇 시간 전부터 현장에 도착해 만나는 사람마다 고개를 숙이며 한 표를 부탁한 반면 오세훈 시장은 프레젠테이션 시작 20분 전에야 투표장에 도착했습니다. 올림픽 유치라는 절체절명의 승부를 앞둔 양 측의 이런 모습이 투표를 앞둔 대의원들에게 상당한 영향을 끼친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전북의 필승 카드는 '지방 연대'
"우리가 이긴다." 투표 3시간 전에 전북 관계자가 필자에게 한 말입니다. 그 이유를 묻자 그는 "지방 출신 대의원들이 전북을 찍기로 돼 있다"고 답했습니다. 그의 말처럼 막판 뒤집기에 성공한 전북의 필승 카드는 '지방 도시 연대'였습니다. 올림픽을 통해 지역 불균형을 해소해야 하며 이런 측면에서 전북 유치가 꼭 필요하다는 논리를 집중적으로 편 것입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의 국가 정책이 서울 등 수도권 중심으로 이뤄졌던 틀을 깨고 비수도권에도 기회가 부여돼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김관영 지사와 정강선 회장은 "서울은 1988년 올림픽을 통해 국제적인 도시로 도약했고 경제 성장을 이뤘다"며 "지방 소멸 위기 상황에서 국가균형발전을 위해서라도 이제는 비수도권에도 기회를 줘야 한다"고 설득했습니다.
김관영 지사는 프레젠테이션에서 "우리나라 전국 단위 스포츠 경기의 88.5%가 수도권 외의 지역에서 열리고 있다. 호주가 세 차례 올림픽을 개최하면서 멜버른, 시드니, 브리즈번으로 옮겨가면서 한 것도 나라의 균형 발전을 꾀한 것"이라며 대의원들에게 지지를 호소했습니다. 전북은 올림픽을 유치하면 육상 경기를 대구스타디움에서 개최하고, 광주(국제양궁장·남부대 시립국제수영장), 충남 홍성(충남 국제테니스장), 충북 청주(청주다목적실내체육관), 전남 고흥(남열해돋이해수욕장) 등에서 분산 개최한다는 계획을 내놓았습니다. 이는 IOC가 지향하는 인접 도시 연대를 통한 비용 절감 요구에 부합하고, 수도권에 집중된 인프라·경제력의 분산으로 균형 발전에 새로운 모델을 제시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입니다.
선수촌과 숙박 어떻게 해결하나?
"열정만으로 5성급 호텔을 지을 수 있을까?" 전북이 서울을 제치는 이변을 일으키자 대한체육회 관계자가 내뱉은 말입니다. 전북이 열정과 집요함을 바탕으로 국내 후보 도시가 됐지만 숙박 등 인프라가 턱없이 부족해 국제 경쟁력에서 취약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입니다. 가장 먼저 거론되는 것이 선수촌입니다. 올림픽에 참가하는 전 세계 선수단은 '테러' 문제 때문에 일반 호텔에서 잘 수 없습니다. 철통 안전이 보장된 선수촌이 반드시 마련돼야 해 대규모 아파트를 신축하는 것이 불가피합니다. 또 올림픽 주요 관계자들이 머무를 5성급 호텔도 다수 지어야 합니다.
문제는 인구가 많은 서울과 달리 전북에 이런 대규모 고급 시설을 지었을 때 사후 활용이 사실상 어렵다는 점입니다. 다른 시도와 분산 개최를 한다고 해도 올림픽을 치를만한 수준의 경기장이 현재 적다는 것도 해결해야 할 과제입니다. 각종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결국 엄청난 비용이 수반돼야 하는데 중앙 정부의 자금 지원이 어느 정도 이뤄질지는 미지수입니다. 서울에 비해 국제적 지명도가 크게 떨어지는 점도 보완해야 합니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은 3수 끝에 유치에 성공했는데 외국인들이 북한의 평양과 강원도 평창을 확실히 구별하는 데 거의 10년이 걸렸다는 후문도 있습니다.
인도와 카타르 꺾어야 올림픽 개최
서울을 상대로 극적인 승리를 거둔 전북은 유치 신청서를 공식적으로 내기 위해 국내 절차 마무리에 들어갑니다. 우선 대한체육회의 주무 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에 국제행사 개최 계획서를 제출한 뒤 승인을 받아야 합니다. 문체부는 국제체육대회심사위원회를 열어 전북의 2036년 올림픽 유치와 관련해 심의한 뒤 큰 문제가 없으면 승인합니다. 이어 기획재정부의 국제행사심사위원회의 승인까지 받으면 정식으로 국제행사 개최 협약을 체결합니다. 이후 전북이 올림픽 유치 의향서를 대한체육회를 거쳐 IOC에 제출하면 치열한 본선 경쟁이 시작됩니다. 2036년 올림픽 유치전에는 인도와 인도네시아, 카타르, 튀르키예 등 약 10개국이 뛰어들 전망입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