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대 중반 고급주택지 붐 일어… 동서 벗어난 한강 남쪽 이례적 개발
명수대에 日중산층 겨냥한 주택 외 호수-벚꽃길-온천 갖춘 유원지 조성
조선인 학교 유치해 융화 상징 돼… 개발업자 꿈 더해 독특한 주택지로
1920년대 중반 이후 경성에서 두드러진 사회 현상 가운데 하나는 외곽 지역의 고급 주택지 개발 붐이었다. 가파른 인구 증가와 도심 생활환경의 악화, 이른바 산자수명(山紫水明)한 교외에서 쾌적한 삶을 누리려는 중산층 (주로 일본인)의 수요가 맞물린 결과였다. 유동적인 경제 상황 속에서 토지를 가장 확실한 투자처로 여긴 개발업자의 정서도 한몫했다.》
주택지 안에는 간이 온천과 일본식 여관도 들어섰다. 당시 고급 주택지를 조성할 때 주민을 위한 부대시설을 어느 정도 포함시키는 게 일반적이었지만, 명수대는 그 정도를 훨씬 넘어섰다.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경치 좋은 곳에 주택지를 포함한 광활한 유원지를 조성한 것이다. 1937년 경성관광협회가 펴낸 ‘관광의 경성(觀光の京城)’에서는 명수대를 “성장하는 경성의 이상적인 주택지”이자 “새롭게 경성의 관광지로 데뷔하려는 곳”으로 소개했다. 또한 “신설된 하이킹 코스는 당일 일정으로 느긋하게 즐길 수 있다”고 설명했다.
유원지로서의 명수대는 사회주의문학 활동을 하다 전향한 소설가 김남천의 1940년 작품 ‘속요(俗謠)’에도 등장한다. 작품 속 인물 김경덕, 홍순일, 이정임은 10여 년 전 일본 도쿄에서 사회주의 운동을 함께했던 옛 동지들이다. 현재는 모두 전향해 평범한 생활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이들은 우연히 명치정에서 만나 같이 술을 마신다. 술자리가 끝난 뒤에도 유부남과 유부녀인 홍순일과 이정임은 헤어지지 않는다. 두 사람을 태운 택시는 경성역과 용산역을 지나 한강을 건넌다. 이정임은 홍순일이 자기를 어디로 데려가는지 알지 못하지만, 가 본 적 없는 한강 남쪽으로 향하는 “기이하고도 재미스러운 드라이브”를 즐긴다. 홍순일이 밀회를 위해 이정임을 데려간 곳은 명수대의 고급 일본식 여관이다.
192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널리 알려지지 않았던 흑석리 일대는 어떤 연유로 고급 주택지 후보가 된 것일까. 명수대 주택지를 개발한 인물은 후쿠오카 출신의 기노시타 사카에(木下榮)였다. 그는 도쿄외국어학교를 졸업한 뒤 조선으로 건너와 고향 선배인 시키 신타로(志岐信太郞)의 인정을 받아 1911년 토건회사 시키조(志岐組)에 입사했다. 이후 그는 시키조를 비롯해 같은 계열의 시키공업회사, 조선천연빙(天然氷)회사 등의 중역으로 근무했다. 시키조는 러일전쟁기 경부선 철도 부설 공사에 참여한 것을 시작으로, 1910년대 한강인도교(현재 한강대교) 공사를 맡으면서 크게 성장한 회사였다. 조선천연빙회사 역시 겨울철 한강의 얼음을 채취해 저장·판매하는 사업을 했다. 이처럼 회사의 주요 사업이 한강 변과 연관돼 있었다. 기노시타는 시키조의 여러 사업에 관여하면서 흑석리 일대의 개발 가능성을 눈여겨보았던 것 같다.
신축된 학교의 교육환경은 우수했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한 재학생은 학교의 분위기를 이렇게 회상했다. “반도의 긴 역사를 싣고 쉼 없이 흐르는 영원의 침묵자 한강을 옆에 끼고, 그 건너편 이름조차 아름다운 명수대 송림 사이에 석조 철근콘크리트 화려한 3층의 새로운 웅자(雄姿), 음악실 속에서 흘러나오는 아름다운 멜로디는 명수대의 맑은 공기를 고요히 흔들며 송림 사이를 스쳐 석양에 노 젓는 뱃사공의 귀에까지 울려갈 것이며, 명수대 산골짝의 이름 모를 풀포기들은 속삭이는 듯 그윽한 향기 속에 취하여 하늘하늘 떨고 있다.”(‘중앙대학교 60년사’, 1978년)
그런가 하면 기노시타는 “사회사업 방면에 눈을 기울여 오던 바 조선인 자제 교육이 너무나도 뒤떨어졌다는 것에 큰 느낌을 가”진 것이 은로학교(현재 흑석동 은로초교의 전신)에 기부한 계기가 됐다고 말한다. 은로학교는 1908년 개화파 유길준이 설립한 학교다. 유길준이 사망한 뒤 뚜렷한 경영 주체가 없어 만성적인 운영난 속에 겨우 유지되고 있었다.“은로학교 자제들을 위하여 거액을 기부하였다. 이 은로학교는 30여 년이라는 장구한 역사를 가진 학교인데 부채로 인하여 존폐 문제까지 있어 학교의 부채 4000여 원을 맡기로 하고, 또 토지 2500여 평을 기부하여 학교를 명수대로 이전 신축할 것과 앞으로 모든 경영 책임을 지기로 모든 수속을 완료하였다 한다.”(매일신보 1936년 4월 5일)
명수대 주택지는 주택지 및 유원지를 넘어 일종의 ‘교육도시’라는 문화적 이미지를 얻게 됐다. 또 일본인 마을 한복판에 조선인 학교들이 자리 잡으면서 내선 융화의 상징성도 갖게 됐다. 이를 통해 기노시타는 이익을 추구하는 유능한 개발업자를 넘어 지역사회의 유지로 발돋움했다. 그는 1936년 4월 경성 행정구역 확장 이후 처음 치러진 경성부회 선거에서 명수대 일대 거주자 2000여 호의 득표를 기반으로 당선됐다.
일제강점기 경성 영역의 확장과 주택지 개발의 흐름, 중산층의 교외 지향, 부동산 개발을 통한 이윤 추구, 개발업자 이상의 사회적 지위를 얻고자 한 기노시타의 열망이 어우러지면서 명수대는 다른 지역과 구분되는 독특한 주택지로 탄생했다.
염복규 서울시립대 국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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