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드랑이에 피어난 풀…"사춘기의 상실과 공포 담아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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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회 전주국제영화제 한국단편경쟁 부문 감독상을 받은 ‘불쑥’의 한 장면.  CJ문화재단 제공

제26회 전주국제영화제 한국단편경쟁 부문 감독상을 받은 ‘불쑥’의 한 장면. CJ문화재단 제공

사춘기에 접어든 여자아이. 점점 변하기 시작한 자기 몸을 구석구석 살피던 중 겨드랑이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한다. 그곳에 털이 아니라 풀이 듬성듬성 나기 시작한 것. 겁에 질린 주인공은 겨드랑이에 제초제까지 바르고, 자기 몸에 생긴 이상한 현상에 혼란스러워한다.

2025년 전주국제영화제 한국단편경쟁 부문 감독상을 받은 영화 ‘불쑥’의 시나리오다. 작품은 엄마를 여읜 어린 여자아이가 사춘기를 맞으며 성장하는 과정을 그렸다. ‘불쑥’을 제작한 1999년생 젊은 영화감독 김해진(사진)을 지난 12일 서울 쌍림동 CJ제일제당 본사에서 만났다.

겨드랑이에 피어난 풀…"사춘기의 상실과 공포 담아냈죠"

‘불쑥’의 구상은 그가 학창 시절 느낀 두려움에서 시작했다. “중학교 3학년 때 어머니가 암에 걸리셨어요. 지금은 다행히 완치됐지만, 그때부터 죽음에 대한 공포가 마음속에 자리 잡았어요. 지금도 엄마가 슬로모션으로 창문 밖으로 떨어지는 악몽을 꿀 때가 있습니다.”

작품의 배경이 된 시골집은 김 감독이 어린 시절 종종 놀러 간 할머니 집이다. 인구 800명도 되지 않는 전북 진안군 상전면에 있는 이 집은 풀과 산으로 둘러싸였다.

김 감독은 고요한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슬픔과 두려움을 전하고자 했다. 그는 “한 편의 시처럼 반복되는 이미지를 만들길 원했다”며 “주제를 말로 설명하기보다 작품을 아우르는 분위기로 감정을 전달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주인공의 임신한 이모가 입은 초록색 원피스 위에 드러난 동그랗게 부푼 배, 주인공 겨드랑이에 난 풀을 통해 무덤과 죽음의 이미지를 만들었다. 자글자글한 입자가 보이고 초록빛이 도는 화면이 마치 필름 사진을 통해 과거를 회상하는 듯한 분위기를 전한다.

영화 ‘우리들’을 만든 윤가은 감독과 ‘연애 빠진 로맨스’를 연출한 정가영 감독이 ‘불쑥’ 제작에 멘토로 참여했다. CJ문화재단 신인 단편영화감독 지원사업 ‘스토리업’에 선정돼 시나리오 개발, 멘토링, 출품 등 영화 제작 전반에 종합적인 지원을 받으면서다.

김 감독은 “선배 감독들의 멘토링을 받아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내면을 드러내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며 “영화를 생각하는 진심, 그리고 그 진심을 영상을 통해 전하는 방법을 배웠다”고 말했다.

김 감독은 첫 장편영화를 만들 준비도 하고 있다. 2017년 포항 지진 당시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른 그의 경험을 기반으로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고. 김 감독은 “고등학교 3학년 수험생들 사이 균열을 지진과 엮은 이야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 감독은 “보편적인 감정으로 관객을 울리는 영화를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글=구교범/사진=임형택 기자 gugyobeo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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